딱 한 평, 당신이 돌보시던 화단콘크리트 비집고 틈 낸 자리얼마 전 내게 비켜 주신 자리허전한 마음 달랠까 싶어그리움 주렁주렁방울토마토 심었는데, 빈자리날마다 뿌려둔 우리 추억하늘가에 아롱아롱체리세이지 춤추는데, 아직 빈자리고운 당신 보는 듯하얀 저고리 흰꽃샤프란 피었는데, 여전히 빈자리아무리 심어도 한 평 화단에는 빈자리거기 채우고 있던 게 당신이었군요*소재 제공: 남해읍 하남희 님

이른아침 고기 잡으러

유월 초 다랭이마을은 바쁜 듯 느긋함을 품고 있다. 먼바다는 연무를 두른 채 다가오는 여름을 피워올린다. 봄 가뭄이 심한 탓에 천수답인 다랭이논은 아직 모내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 지난봄 유채꽃으로 층층의 물결을 이루었던 다랭이논은 메말라 있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이지만 체험활동이 아니면 농사일을 경험할 수 없는 시대이다. 아이들에게 내가 사는 고장의 뿌리, 남해 섬사람의 억척스러운 다랭이정신과 바래정신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전날부터 들뜬 아이들과 함께 다랭이마을에 도착한다. 설흘산 중턱 도로에서 시작된 골목길은 경사를 이루며 꼬

대다수 과일과 채소는 제철에만 볼 수 있었던 시절에 계절마다 찾아오는 과일의 향기는 기다리는 즐거움과 보내는 안타까움을 같이 주었다. 집집이 마당에 커가는 감이 채 여물기 전 비바람에 떨어지면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빗물통에 담가 떫은 기운만 가시면 주시곤 했는데 지금도 그리운 맛으로 기억한다. 하우스 농법이 발전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과일과 채소의 생산이 계절을 앞당기다 못해 지금은 오히려 제철에는 보기 힘들어져 버렸다. 여름 딸기가 겨울에만 나오는 요즘 동화 속 효녀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제 병든 노모는 누구도 죽지 않으리라 생각한

마을 노인회장님, 총무님과 같이 강원도 정선 5일장에 가는 날 필자는 몇 년 전 정선 덕산기 계곡의 트레킹을 떠올린다. 2013년 7월 28일 이 날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의 덕우리에 있는 덕산기 계곡이라는 오지중의 오지를 가게 되었다. 이날 트레킹은 MBC 텔레비전의 `원더풀 금요일` 제작팀과 같이 하게 되었다. 담당 PD와 왕배 리포터, 3명의 촬영기사는 시종일관 산악회 회원들과 동고동락을 같이 하며 트레킹을 이어갔다. 조용히 촬영에 임하는 그들의 진지함과 리포터의 익살과 재치 때문에 힘든 트레킹이 오히려 즐거웠다. 트레킹 과정

깨달음을 얻어 목숨조차 가볍게 여겨거두는 자의 손길에 목을 길게 늘이고각각 앵두 산딸기 보리수라 이름 짓고점점 발개지는 얼굴을 보니저가 다다른 그 경지에서도 이 목마름이 힘든 모양이다부디, 유월의 푸르름이 아이의 눈처럼 빛나도록비옵나니, 비옵나니

외손녀 오늘도 외손녀를 애타게 기다리네 어여쁜 귀염둥이 우리 집 복덩어리 춤추랴 노래 부르랴 바쁘기도 하여라. 엄마 얼굴놀이터 모래 위에 그려본 엄마 얼굴눈 코 입 그려 넣자 미소가 번져나네나이를 먹어갈수록 보고 싶은 어머니!고마운 당신응달진 내 뒤란도 따스한 밝은 햇살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온 스위트 홈 진갑 년 가정의 달에 감사한 맘 전하오. 장행복은 장기간 유치원을 경영해 온 교육자다. 이름이 행복인데 시제 또한 행복이다. 그가 아니라도 누구든 인생의 일반적 목표는 행복이 아니던가? 이 시조를 읽는 순간 먼저 `수신제가후 치국평

`플랫폼`하면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거장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 플랫폼은 한 마디로 무엇인가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본 구조, 상품 거래나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 반복 작업의 주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 때문에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 구글, 애플, 페이스북, 그리고 아마존이 자신들만의 강점을 가진 플랫폼을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 절대 강자로 부상하면서 비즈니스 업계에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장렬히 산화한 유공자의 추모식에 참석하여주신 내외귀빈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계절은 초여름으로 접어들어 온 산야가 신록으로 덮여 푸르름을 자랑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의 축복을 받은 이 땅에서 삼가 옷깃을 여미고, 여기 아버지와 영령들께서 남겨두고 가신 아들과 딸,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미망인을 비롯하여 조국을 지키려다 천신만고의 역경을 딛고 살아남으신 역전의 동지들께서도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하셨습니다. 6·6일 현충일은 범정부적인 추모행사를 전국적으로 거행함으로써 온 국민이 국가를 위

학창시절 추석이 다가오면 성룡의 액션 영화와 007시리즈를 손꼽아 기다렸고 람보나 터미네이터를 보고 전율을 느끼곤 하였다. 영화 속 성룡과 홍금보, 원표의 액션 연기를 보고는 친구들과 쿵푸 연습을 했고 람보를 보고는 무거운 중기관총을 한 손으로 쏠 수 있는지 없는지 토론도 했다. 맨몸으로 싸우는 시대를 지나 주윤발의 쌍권총이 불을 뿜은 후로는 롱코트와 성냥개비를 입에 문 젊은이들로 거리가 물들기도 하고, 의리를 지키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때로는 풀리지 않는 미제 사건을 해결하던 그들은 일반인보다 조금 더 용감하고 조금 더 능력이

꽃이라 불러주면 꽃으로 다가오고뱀이라 여길 때는 목 졸림 숨 가쁘니경락을 타고 흐르는 순한 기공 찾으라 중국 무술에서 의념(意念)이란 말은 `목적을 가진 사고`라고 하는 일반적 견해에 필자도 동의하면서 또 한 의념을 `이미지`로도 넓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의념(意念)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지만 중국 무술에서는 이 개념을 떠올리지 않고는 이론의 성립은 물론 실전에서도 그 존재가 미미해진다. 예를 들어 흔히들 운동과 노동의 차이를 말 할 때 좋은 비유가 있다. 즉 `몸을 움직이는 어떤 일이 건 그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

샘요, 호박잎 축 처져 있으면그게 목마르다는 소립니다.비도 오지 않는데, 비옷 같은 잠바를 입은 사람들이 가뭄에 도르르 몸을 말고 있는 느티나무 가로수 잎사귀를 들추고 자기 이름을 외친다. 허리가 굽어 귀가 땅으로 도르르 말린 노인의 귀를 들추고 무슨 암호를 전달하고 사라진다. 명함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온다. 온갖 장 단지로 빽빽한 명함이 깨져 거리를 절인다. 선거가 시작된 역사 이래로, 비옷 같은 잠바 입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경우는 없었지만, 혹시나 싶어, 나도, 명함 대신 내밀까 싶어 시든 호박잎 몇 장 가슴에 품고

안개는 흐르고

우리 가족은 다소의 개인차는 있지만 쥐와 벌레를 기피한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설치류 중에는 다람쥐가 그나마 낫고 쥐나 두더지는 극혐이다. 절지동물은 종류 불문하고 대체로 혐오 대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남편은 쥐와 지네에 칠색 팔색 한다. 파충류인 뱀은 소싯적 노릇노릇 구워 먹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다지 꺼리는 것 같지 않다. 나는 쥐와 지네와 뱀이 무지하게 싫다. 소싯적에 `쥐 잡는 날`을 앞두고 동사무소에서 쥐약을 받아다가 통장 집 막내딸 자격으로 선친과 함께 각 가정에 배달하곤 했다. 그때 단체로 죽은 쥐

조선 연산군 시절 시문에 능하고 음양의 조화에 밝았던 정희랑은 자신의 운명과 수명을 예측하고는 귀향 후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는 전국을 떠돌았다. 신선처럼 유랑하던 그는 스스로 만든 그릇에 각종 채소를 익혀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그릇과 음식을 익혀 먹는 방식이 지금의 신선로 유래이다. 임금이나 사대부가 연회 때 즐겨 먹었다는 신선로를 서민들은 즐겨 먹진 못했지만 그나마 명절이나 제사 후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신선로처럼 그릇에 숯을 넣고 여러 음식을 정갈하게 나누어 담아 먹진 못해도 간편하게 한 솥에 끓여 먹은

가시 끝 매서워서 귀신도 비껴가는 음나무 거둔 손길 군데군데 찔렸으나 기어이 껍질까지도 벗겨내는 사람아 노인 회장님이 음나무를 가지치기 하시며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이 나무의 이름은 음나무와 엄나무를 같이 쓰는데 가시가 엄하게 생겨서 엄나무로 불러진다고 한다. 오죽 엄했으면 옛날부터 대문 앞에 걸어 두어 잡귀를 쫓는 풍습이 생겼겠는가. 가지는 닭백숙에 넣어 영양분과 약효를 높이고 순과 잎은 사촌 격인 두릅나물보다 향기가 강하고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영양학적으로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산나물의 귀족에 든다. 회장님 부부

오월에는 온통 하얀 꽃아카시 그만 찔레 찔레너는 가고 나는 남고오월이면 더 그리운 님다정큼 이만 층층 층층글로 못다 쓴 여백오월 가면 님도 따라 간다고이팝 조팝 수국 수국잠들다 깨는 소쩍새

피어나는 안개는 보리암을 감싸네

창포 꽃 진 눈물을 백조는머금고 있으리장끼 울음소리는빈 하늘이 전하고 있으리흑장미 그루터기에내 시(詩)는 새겨졌으리 날리는 귀밑머리엔찔레꽃물 묻어 있으리실개천 고랑물엔은어 떼는 헤엄치리돌아와 본 핸드폰엔당신 손금 남아 있으리(시조 이처기) 계절의 여왕 5월이 가고 있다. 신선한 초록 바람이 불어오는 길에 아카시아 향이 스미나 했더니 이팝나무 하얀 쌀밥 잎이 흐드러지고 길목마다 공원마다 장미는 또 피어 하얗게 붉게 노랗게 각색으로 반기고 있다. 산 너머에는 장끼가 끽끽거리고 오동나무 연한 꽃잎도 흐드러지는 그야말로 계절의 여왕 5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