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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훈련 모습도 많이 변했다. 반공이 국시가 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 군사정권 시절, 우리는 북한의 공습에 대비한 대피훈련과 간첩식별 요령을 배웠다. 학교 가는 길 집회소(마을회관) 블록 담벼락에는 아군기와 적기 식별 요령, 화생방전에 대한 대피요령의 벽보가 붙어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매월 15일이면 어김없이 민방공 훈련을 했다. 경계경보가 우선 발령되고 뒤이어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우당탕 뛰쳐나와 운동장가 나무 밑에 손으로 눈 코 귀를 막고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는다. 어쩌다 고개를 들면 쥐어 박히기 일쑤였다. 해제경보로 훈련이 끝나면 전교생들은 방화수를 기점으로 일렬로 서서 물통에 물을 담아 가상의 화제를 진압하는 훈련을 반복햇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더구나 더운 여름철이면 더 그랬다. 그런 훈련도 장마가 늦게 시작돼 가뭄이 심한 모내기철이 다가오면 못자리판에 물을 주는 일에 도움이 됐다. 양수기도 귀한 시절 일렬로 늘어서 물동이를 옮겨 모판에 붓는 일은 모두가 함께하면 어려움도 쉽게 이겨낼 수 있다는 산 경험을 알게 했다.지구촌은 아직도 전쟁과 기아,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살림이 빈약한 나라는 내 국민이 죽어가는 현실을 보면서도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만 바라고 있다. 이런 일은 불과 50여년 전 한국전쟁 직후의 우리네 모습과 흡사하다. 특히 아프리카는 더 심각하다. 또한 산동성 대지진과 크고 작은 재해에 귀한 인명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내일이 아니라고 방관하기는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난달 민방위 훈련은 다른 날과는 달리 국가재난 대응훈련으로 실시됐다. 아이들은 재난상황 동영상을 보고 재난의 종류와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알게 됐고 대피 훈련에 대해도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적어졌다.교육은 체험을 통하여 습득 되어진다. 요즘 신세대 부모들은 나약한 아이들을 염려하여 돈을 들여서라도 어려움을 겪는 체험캠프에 보낸다. 그곳에서 올바른 정신을 배우고 부모들이 겪어온 일들을 방법과 형태를 달리하여 체험 하는 것이다. 전교조회 시간이다. 교장 선생님께서 “6·25가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누가 전쟁을 먼저 일으켰나요?”전교생이 천명에 가깝지만 손을 드는 아이는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아이들은 여름을 앞둔 뙤약볕아래 서 있는 것을 힘들어 하며 불만이다. 속으론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지금이 중요하지!’하는 아우성이 들린다. 참을성 없는 아이들의 느슨해진 국가관을 느끼게 된다.모두가 함께하며 지키고 다듬어 온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우리주변에 재난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런 대형 참사도 우리는 망각의 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인지 사흘이 지나면 관심의 영역에서 멀어지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각자의 일상에 묻힌다.북한 핵보다 더 무서운 게 낮아지는 신생아 출생률이라고 말한 어느 국회의원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정말 더 무서운 것은 재난과 재해에 무감각하고 지난날의 아픔을 모르는 개인주의일 것이다.내가 소중한 만큼 이웃도 소중하다는 협동의 중요함을 느끼고 배우며 어려움을 대비하는 마음이 모였으면 좋겠다.앞서간 세대의 일을 무조건 고루하다고 멀리하기보다 다듬어 새 것으로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앞날을 준비하는 또 다른 민방위 훈련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독자기고 | 장현재(남해초 교사) | 2009-11-26 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