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털나고 처음 해 본 연극, 헐만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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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털나고 처음 해 본 연극, 헐만허네”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0.11.19 10:55
  • 호수 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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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연극 무대에 선 할매 4인방을 만나다

남해마늘 담겨있어 빨리 적응, 우리 이웃 앞이라 자연스러웠다

“헐만허네, 연극. 시간만 좀 더 있었으면 좀 더 멋들어지게 했을껴”

연극 ‘너희가 마늘을 알아?’를 끝내고 난 직후 소감을 묻자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듣기로는 3번의 배역교체가 있었을만큼, 특히 농번기와 겹치는 시기여서 시골어르신들에게는 더욱 부담이고 곤혹스러웠을 연습이라 들었는데 막상 연극이 끝난 뒤, 주인공들은 달랐다. “어설프지 않고 자연스러웠어? 그랬담 그걸로 충분하제”하시면서도 내심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한 모양이다. 재차 괜찮았냐고, 대사는 ‘알아먹겠더냐’고 물으신다.

그렇게 힘든 대사를 어찌 외웠냐고 묻자 “외우긴 뭘. 애써 외운 건 다 날려버리고 엉뚱한 말을 끄집어 냈제. 우리가 틀리게 해도 상대배우들이 딱딱 맞춰줬지”하시며 웃으신다.

가장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웃음으로 분위기를 띄운 홍분애 씨 역시 “대사가 어렵고 기간이 짧아 다들 슬금슬금 피했다. 하지만 연출이 우리 생활속 대사를 그대로 편하게 하라고 재차 말해줘 차츰 수월해졌다”고 했다.

태규네를 맡은 하옥례 씨는 “마늘 비닐 씌우는 일도 미루고 연습했다”며 연극하는 할매 4인방 때문에 마을 전체가 마늘 비닐 씌우는 일이 연기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유난히 가녀린 체구여서 발성이 가장 어려웠다는 주실네 박남숙 씨는 목소리를 ‘고것밖에 못내냐’고 타박 주는 남편 김정언 이장에게 “내 허리가 27이요. 말이 우찌 크겠노”라며 난색을 표해 보는 이로 하여금 또 한번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사는 속내를 듣자니 가슴이 지릿해지기도 했다. 남편이 신종플루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못가봤다며 이제야 마음 편히 가보겠다는 정영리 씨.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급작스런 사고로 몇년째 투병중인 남편을 같이 돌봐야 하는 도저히 짬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구김살없이 연극에 열성을 보여준 하옥례 씨. “그래도 아들 태규가 있어 살맛난다”는 하옥례 씨의 한마디에 마늘처럼 맵고 강한 모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늘과 더불어 우리 금석마을을 알릴 수 있다는 그 사명감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이구동성으로 힘차게 말하는 어르신들. 그들의 목소리에서 세월에 빛바랜 사진 속 ‘당찬’ 소녀시대를 다시 만난듯 했다.

한편 남해에서 여러회 공연을 펼친 홍영준 씨가 극작과 연출을 맡고, 극단 남해 배우들의 우정출연으로 올린 이번 연극은 남해 마늘로 자식들을 한평생 키워낸 어버이들의 애환을 잘 표현해 노인이 주체가 되는 공연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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