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고 다시 돌아오고 싶은 ‘행복마을 서호’
상태바
살고 싶고 다시 돌아오고 싶은 ‘행복마을 서호’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12.30 17:44
  • 호수 2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해시대 우리마을26 ‘서면 서호마을’


이 꿈이 이뤄진다면 3∼4년 후에는 살고 싶고 다시 돌아오고 싶은 ‘행복마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로부터 충절이 서려있는 예의바른 마을로 유명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성장하는 친환경 녹색마을
마을회관 호운각 준공 제막식 갖고 주민 화합 다져

55년전 한국의 전통방식으로 곱게 지어진 한옥마을회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서호마을사람들에게 있어 한옥마을회관은 예와 충절을 몸에 익히고 더불어 살아가는 현명한 지혜를 가르쳐준 소중한 공간으로 남아있다.

서호마을은 한옥에 담긴 우리민족의 얼과 정신이 살아있는 마을회관을 ‘호운각’이라 이름 붙이고 지난 26일 향우회와 내빈, 마을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을 가진 마을회관은 지난 4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장방과 동네방을 신축하고 호운각 문과 기둥은 리모델링했다. 자부담 5천만원을 포함해 총 2억 5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호운각의 현판은 서호마을과 인연이 깊은 김두관 도지사가 직접 썼으며 제막식을 계기로 잘다져진 지난날의 기반위에서 더욱 발전하는 일등서호마을이 되길 꿈꾸고 있다.

서호마을의 태동은 지금으로부터 약 1267년 전 서기 742년 삼국시대부터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읍에서 진양하씨가, 남원에서 경주김씨가, 진주에서 진주정씨가, 의령에서 달성서씨가, 합천에서 문화유씨가, 서울에서 청송심씨가, 밀양에서 밀양박씨가, 서산에서 김해김씨가 그리고 김녕김씨, 경주이씨가 마을내로 이주해와 살고 있다.

지금의 서편 소류지 근처에 기와공장이 있어 ‘와야동’이라고 불리다가 그 후 서상에서 봉성까지 곳곳에 사람이 거주하므로 ‘홀포’라고 했다. 그 후 마을 앞의 큰개전이 서쪽으로 흐른다고 해 ‘서호’라고 개칭돼 오늘까지 불리고 있다.

마을 뒤편에는 1270년 고려 원종 11년 5월 강화도에서 고려 정부가 사실상 몽골에 항복하고 개성으로 환도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불ㄹ복 봉기한 삼별초군은 같은 해 6월 강화도를 출발, 진도로 남하했다. 강화에서 봉기했을 때 좌승선에 추대됐던 유존혁 장군이 일부 삼별초군을 이끌고 남해로 와서 거점으로 삼았던 곳으로 장군터라고 전해온다. 높이 2.5m, 길이 10m가량의 석축형태가 주암골에 남아 있으며 기와조각도 다수 채집됐다.

남해의 최고봉인 망운산 주령의 끝부분에 위치해 다른 어느 지역보다 높은 학문을 바탕으로 해 충효사상이 뿌리내려 많은 인재가 배출되고 있는 마을이다.

김구영 이장은 “우리 서호마을은 역사와 선조들의 후덕으로 인해 다른 어느 마을보다 모범적이고 화합하고 단결심이 강해 미래를 예측하는 각종 사업을 초기에 추진하는 대응력 강한 마을”이라며 자랑했다.

서호마을의 가구수는 95호, 남자 80명, 여자 100명이며 60세 이상 130여명으로 김구영 이장, 류정우 새마을지도자, 정경렬 개발위원장, 김태현 노인회장, 류범수 청년회장, 박숙이 부녀회장 등이 마을의 대소사를 살피고 주민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을의 주요수입원은 유기농으로 생산하는 쌀과 마늘, 시금치이며 소 축사를 운영하는 젊은 사람들도 여러 농가가 있다.

60세 이하의 마을 청년들이 만들어나가는 청년회는 현재 28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2006년 ‘서호마을산악회’를 만들어 매월 1회씩 정기산행을 떠난다. 지난해에는 강원도 태백산을 등반하고 산악인들이 매년 연초에 지내는 산신제인 시산제를 지냈다. 올해는 구제역으로 인해 멀리 산행을 가지는 못하지만 남해의 산에 올라 시산제를 지낼 계획이다.

산악회는 즐거운 산행을 통해 건강한 생활을 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매달 가는 등산이지만 갈 때마다 가슴가득 새로운 기대를 품고 떠난다고.

마을을 대표하는 얼굴인 부녀회는 70이하 3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일어났을 때부터 시작했던 ‘절미저축’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쌀을 조금씩 모았지만 지금은 매월 1회씩 형편에 맞게 저축을 해서 설 무렵이 되면 적금을 깨서 명절 시장을 보는데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에 초상이 나면 집집마다 쌀을 1대씩 거둬 노제를 지낼 때 사용할 떡과 마을주민들의 식사에 사용한다.

이런 활동들이 잘 되는 이유는 마을의 주축을 이루는 청년회와 부녀회, 젊은 사람들의 화합이 잘 되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호마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 ‘친환경농업단지’일 것이다.

서호마을의 친환경농업단지는 1만 3천㎡. 서호마을이 친환경농산물 생산에 관심이 가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오리농법을 이용해 3년가량 농사를 지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오리가 가출을 해서 풀과 벼가 함께 자랐다. 그 다음에는 당밀농법과 쌀겨농법을 이용해 농사를 지었지만 오리농법처럼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해 한 여름에 허리를 숙여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이 빠지도록 피를 뽑았다고 한다.

2005년 우렁이농법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친환경농산물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우렁이가 논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토양을 밀가루처럼 부드럽게 만들어 토양의 질을 풍부하게 만들고 잡초억제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서호주민들에게 우렁이는 큰 일꾼이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탓인지 서호마을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마늘이 유럽시장을 넘보고 있다. 얼마 전 유럽유기농인증기관에서 서호마을을 2차례 방문해 마늘재배와 관련된 실태조사를 해갔고 수출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받았다. 서호마을은 보물섬에서 생산되는 친환경농산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화로 나가는데 앞장서 나갈 계획이다.

소유기농작목반 심덕진 총무는 “인력이 많이 들고 고령화돼 인력문제로 인해 사업을 이끌어 나가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앞으로는 인력을 줄이면서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작목들을 친환경농법으로 생산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10년, 쉼없이 달려온 서호마을이지만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친환경농법을 이용한 농촌체험, 마을회관을 이용한 한옥체험, 마을 임도를 활용한 등산체험, 마을에 있는 고인돌과 삼별초 장군터를 이용한 역사체험 등 농촌체험교육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전통테마마을을 조성해 서호마을을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어 한다.

이 꿈이 이뤄진다면 3∼4년 후에는 살고 싶고 다시 돌아오고 싶은 ‘행복마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업에 환경을 조화시켜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바탕위에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해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농가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친환경농업에 서호마을은 이미 ‘경남 친환경 쌀 클러스터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등 남해군 친환경농업을 이끌어가는 중심에 서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일등남해 중에서도 으뜸가는 부자마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