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이제 그리운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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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이제 그리운 이름으로…
  • 남해타임즈
  • 승인 2010.12.30 17:51
  • 호수 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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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경찰서 윤외출 서장의 남해정착기

1. 사람마다 고향이 있다. 유년의 추억이 살아 쉼쉬고 선대의 터전으로 항상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힘들고 어려운 객지생활에서 한숨을 돌려 세우며 다시 기운을 내게 하는, 그리해 향수병 앓는 사람들의 빈 가슴 한켠을 채우는 그런 고향이 있다.

2.경찰이란 공직에 몸담으면서부터 시작된 유랑, 그 떠돌이 생활에서 우연히 맺은 아름다운 인연, 남해.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애잔한 삶들과 만남.

지독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가 시퍼렇게 날이 선 고단함에 베여 상처투성이인 내 인생에 ‘남해와의 인연’이란 터닝포인트가 찾아올 줄이야 어떻게 상상했으랴. 어찌 이런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단 말인가.

앵강만 신새벽 물안개와 눈 시린 달빛, 다랭이마을 한폭의 낙조와 편백림 천상의 오솔길 산책, 설흘산의 벼랑 병풍을 질투하듯 곁에서 내달리는 한려해상 푸른 바다내음.

낯설은 아름다움… 그 조우가 주는 이상한 어색함, 마음 깊은 곳에서 가슴 시리도록 떨려오는 울림은 여태껏 지나온 내 찌든 삶의 뒷그림자가 얼마나 긴 그리움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지를.

얼마 시작하지 않은 남해생활의 초입에 나에게 그렇게 울부짖고 있다.

3.경찰이란 고된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도시와 사람들을 만나고 머무르면서 또 떠나길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저 그런 일상의 반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덤덤하고 별 의미없는 도돌이표 만남과 이별임을 부인할 길 없다.

충무공의 바다, 남해대교 건너 충렬사 참배를 시작으로 경찰서장이란 치안책임자로서의 첫 순정을 고스란히 바친 순결의 땅, 남해. 막걸리 한사발도 제대로 들이키지 못한 채, 매사에 어설프며 섣부르고 덜 여물은 나에게 무한한 애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이 땅의 많은 인연들과 더불어 150여명의 남해경찰 동료들은 내 경찰인생에 결코 작지 않은 느낌표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노인대학 특강명분으로 오랜 인고의 세월동안 이 땅을 굳건히 지켜온 지역어르신에게 첫 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물섬의 아름다운 청년 도립남해대학생들에게 희망을 얘기하고, 얼마 전에는 미래주역이 될 중ㆍ고교생에게 함께 꿈을 꾸자고 할 기회를 가졌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남해의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1년간의 특이한 만남이라 하겠다. 그 또한 행운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귀신이 농사짓는 곳이 남해란 말을 신천지마냥 구경할 수 있었다. 시금치, 벼농사, 마늘농사가 무슨 도깨비농사도 아니고 숨가쁘게 회전하는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며, 아직도 순수하게 이 땅을 가꾸고 사는 삶, 90도 꺽인 허리춤을 부여잡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그 삶들이 이 아름다운 남해를 굳건히 흔들리지 않게 지키고 선 버팀목이요, 미래의 자손들에게 물려줄 황금 터전의 훌륭한 파수꾼임을 난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그래서 난 남해의 미래를 자신한다. 가까운 장래에 대한민국 최고의 미래행복도시, 최고의 휴양지로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본다.

그때까지 공짜와 보상심리에 젖어 소탐대실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이토록 아름다운 산천과 그 속에 살고있는 사람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질만능주의에 길들인 외지인들에게 이 터전을 야금야금 뺏앗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미래를 의심하는 사람에게 난 자신있게 설전을 할 준비가 돼 있다.

4.이런 남해와의 인연이 내 유년의 가슴 시린 세월을 담고 있는 어르신 땅보다 더 아련하게 생을 파고들어 이제 내 작은 인생사의 한페이지를 기록하는 것으론 부족해 내 장년의 전부를 차지하려 한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보다 더 장년의 망설임을 흔쾌히 녹여줄 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난 한치의 눈치보기나 주저함 없이 경찰 인생의 기로에 서서 기꺼이 이 공감을 받아들이려 한다.

경찰서장으로 지역봉사에 많이 부족했던 나에게 혹여 떠날 때 남해군민이 허락한 명예주민증이라도 쥐어준다면 언젠가 그 인증서를 소중히 품에 안고 의기양양 꼭 다시 돌아오고 싶다.

남해를 그냥 그리운 이름으로 기억하기 보다는, 나도 그 따스한 품속에서 동행자고 되고 싶은 게 솔직한 바람이다.

나도 나의 미래짐작에 온몸을 던져 그 속에서 함께 확인하고 싶다. 내 미래의 보석상자가 열림을 그 누군가에게 목청껏 외치고 싶다. 내 경찰서장 좌충우돌 유년의 고향은 … “남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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