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키운 남해청년회의소 새롭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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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키운 남해청년회의소 새롭게 봐주세요!”
  • 김광석 기자
  • 승인 2011.05.26 15:18
  • 호수 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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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기업과 그 CEO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10> - JCI남해청년회의소 양종진 회장


JC 지역사회 지키고 가꾸는 참된 청년단체

오늘 이야기를 나눈 주인공 JCI코리아 남해청년회의소의 양종진(37) 회장은 정말 열혈하게 남해청년회의소를 사랑하는 진짜배기 JCI맨이다. 어느 JCI맨이 그러지 않겠는가마는 그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지역사회를 지켜가며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단체로 남해청년회의소가 군민들에게 인식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다.

지난 어린이날 남해스포츠파크에서 개최한 어린이날 축제한마당 행사가 3천명이 넘는 군민들이 모인 성공적인 행사였는데 본지의 보도는 그에 걸맞은 지면을 할애해주지 않은 것이 그는 크게 섭섭했던 모양이다. JCI남해를 책임진 회장으로서 그는 아주 조용하고 정중하게 그 섭섭함을 필자에게 전해왔다. 이것이 그를 만난 이유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와 앉자마자 그의 섭섭함을 달래주기 위함이란 처음의 생각을 거둬들이고 남해청년회의소가 현재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군민들에게 진지하게 전달해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나고야 말았다. 그의 마음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JCI회장이 되기까지

JCI(JUNIOR CHAMBER INTERNATIONAL)는 20세에서 42세까지의 청년들이 지역사회를 단위로 모임을 운영하면서 개인능력개발, 사업능력개발, 지역사회개발, 국제경험개발이라는 4대 활동기회를 부여하는 국제민간단체로서 미국인 ‘헨리 기젠비어’에 의해 1915년 창시됐다. 청년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지역사회 개발에 참여하며 세계 회원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적인 경험과 시각을 가지게 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하게 하는 양성소다.

고현면 차면마을 출신으로 고현초, 고현중, 남해정보산업고를 나오고 군복무를 마친 다음 고향에 돌아와서는 인척이 경영하던 남해고물상에서 일하던 그에게 누군가 JC I가입을 권유했었는데 그때가 29살인 2003년이었다. 처음 가입한 그에게 가장 깊게 각인된 JCI의 장점은 JCI만이 가지고 있는 회의진행법이었다.

사전 이사회를 통해 정리된 의결사항을 동의, 재청, 삼청을 통해 의결하는 회의진행법은 그 어디에서건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회장(김경언 전 회장)이 너무 멋있어 보여 나도 언젠가는 회장이 돼야겠다는 포부가 그의 마음에 생겼다. 그 때부터 그는 가장 모범적인 회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집행부의 일원으로 참여해 회장이 되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인척으로부터 넘겨받은 고물상을 2006년 남해종합환경이라는 법인회사로 승격시킨 의지 역시 누가 봐도 어색하지 않은 회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사업능력개발이 JCI의 회원의 기본 수칙이지만) 것이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때가 되면 자연히 맡겨지는 회장이 아니라 회장이 되기 위해 그는 한 가지에서부터 열 가지까지 능동적으로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JCI의 신조 중 “인류에의 봉사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사업임을 우리는 믿는다”는  마지막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힘든 난청 배려해주길

더 많은 회원확보를 위해 

여기까지만 들어도 필자는 JCI의 회장직이 그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직책인지, 어린이날 행사보도에 지면을 적게 배정한 본지에 대해 그가 섭섭하게 느끼는 알맹이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고민은 필자에게 섭섭함을 전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여느 사회단체와 마찬가지로 남해JCI 역시 지역사회의 노령화에 따른 회원 자원이 부족한 문제로 창립 이래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회원수는 34명, 회원수가 가장 많았을 때와 비교하면 절반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며 회원수를 더 확충할 자원이 점점 엷어지고 있는 것이 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남해JCI는 JCI회관을 매각해야 할 처지에 이르러 있다. 부지를 사고 건물을 지으면서 약간의 빚을 찼었는데 회원수가 줄어드니 관리비를 충당하기가 벅차기 때문이다. 두었던 상근 간사도 2년째 비워두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는 읍 중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회원들이 수시로 모이기 어려운 점도 작용하고 있다. 남해JC 입장에서는 공용터미널의 활성화 방안으로 회자되고 있는 사회단체합동사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야 할 형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남해JC가 한 가지라도 더 좋은 이미지로 군민들에게 다가가야 할 텐데, 그것을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 가장 성공적인 행사를 치렀는데 지역신문 보도가 그 모양이었으니 어찌 섭섭하지 않았을까!

그는 남해청년회의소가 한 때 어떤 특권층 자제들의 사교모임인 것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군민들에게 비춰지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이미지가 완전히 벗겨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역사회에서 정말 좋은 일 많이 하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청년단체로서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남해JCI의 알맹이는 이미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자신한다.

남해청년회의소가 주관하는 행사 중에 가장 큰 행사는 기관단체장 신년인사회와 어린이날 축제한마당, 수능고사 후 청소년축제한마당, 망운산 철쭉 가꾸기, 남해 역사ㆍ유물지 탐방, 연말에 치르는 회장단 이ㆍ취임식 등이다. 여기에 남해JCI가 속한 경남ㆍ울산지구 연차대회와 D지역(거제ㆍ장승포ㆍ통영ㆍ고성ㆍ사천ㆍ삼천포ㆍ남해)대회에 참가한다. 올해는 오는 6월 19일(일) D지역대회를 남해실내체육관에서 남해JCI의 주관으로 치른다.

 

힘든 난청 배려해주길

초등학교 때 높이뛰기 선수였던 그는 어느 날 연습 중에 뒤로 넘어져 한 일주일가량 부모님을 빼 놓고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고를 겪었다.

그 뒤로 그는 귀에서 뇌로 소리를 전달하는 신경계의 이상으로 난청증세가 남아 있다. 어려운 자리에서는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해도 예의상 그냥 알아들은 척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이 점을 배려하면 좋겠다.

남해종합폐기물처리장 근처의 일터에서 6명의 일꾼이 일하는 남해종합환경은 말 그대로 폐기물수집과 처리, 건축물 철거 등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두 다 하는 회사다.

남해의 웬만한 큰 건축물철거작업은 거의 그가 처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6명의 일꾼들에게 각 분야의 사업을 떼어서 사장으로 만들어주는 게 꿈이라고 한다. 자기들처럼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젊은이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살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모두의 바람이 그의 바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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