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의종의 애첩 무비와 이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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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의종의 애첩 무비와 이의방
  • 김성철 관장
  • 승인 2012.12.27 17:31
  • 호수 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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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관장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24

“황궁의 주인만이 나를 취할 수 있다.”

산원이라는 하급 친위장교 이의방은 노비출신 궁녀 무비(無比)에게 사랑고백을 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의방은 총총히 사라지는 무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이의방은 한참 후 그녀가 궁녀이자 임금의 애첩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무비 역시 이의방의 출중한 용모와 기백에 끌렸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가슴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무비는 젊은 나이 때부터 의종과의 사이에서 3남9녀를 낳았으니 임금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의방, 이고, 정중부를 중심으로 한 무신정변으로 의종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무비는 자신을 짝사랑하고 있는 이의방이 있었기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의종의 귀양길에 동행하여 거제도로 갔다. 20년 가까이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의종을 배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의종과 무비는 거제도로 유배되어 폐왕성으로 불리는 둔덕기성에서 귀양살이를 시작했다. 이의방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신정권 제1기의 집권자가 되었다. 허울뿐인 왕, 명종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의방이 실질적인 황궁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첫만남에서 황실의 주인만이 자신을 취할 수 있다고 한 무비를 만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 것이다.

마흔이 넘는 나이, 12명의 아이를 낳은 무비는 아직도 시들지 않는 꽃이었다. 도리어 원숙한 아름다움 때문에 이의방의 심장을 더욱 뛰게 만들었다. 이의방은 폐위된 임금을 따라 귀양길을 떠난 무비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더 많아졌다. 이의방은 이의민을 시켜 무비를 개경으로 압송하도록 했다. 무비와 재회한 이의방은 실질적인 황궁의 주인으로 무비를 취했고, 무비 역시 이의방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말았다.

무비는 황궁 밖의 사찰에 머물면서 이의방의 연인으로, 정치적 조언자가 되었다. 무신정권이 들어선지 3년째 되는 1173년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의 난이 일어났다. 김보당은 무신정변에 참가했지만 정치가 더 문란해지자 의종의 복위를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장순석과 류인준은 거제에 유배되었던 의종을 경주로 모시고 나와 웅거했다.

무비는 이의방에게 의종을 죽여야 한다는 언질을 했다. 이의민은 경주로 진격해 의종을 붙잡았다. 이의민은 곤원사 연못가에서 술 두어 잔을 마시게 한 후 의종의 등뼈를 부러뜨려 죽이고 시신은 연못에 던져 수장시켰다. 무비는 자신을 십수년간 사랑해 주었던 임금을 죽이라고 한 악녀가 되고 만 것이다.

무비는 이의방에게 친형인 이준의를 멀리하고 문극겸과 이인을 곁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하여 이준의와 견원지간이 되었다. 동생의 뒤에서 호가호위하며 권세를 누리던 형 이준의보다는 충직하고 자기분수를 지킬 줄 아는 동생 이인을 적극 천거했다. 이인은 이성계의 6대조로 문극겸의 사위였다.

인종의 비 공예태후는 자신의 동기인 임씨를 이의방의 첩으로 보냈다. 무비는 임씨가 정중부의 아들 정균과 가까이 지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것을 어찌하오리까. 세상에 조강지처 외에는 어떤 여자도 조심하시오”라며 걱정스러워했다. 이의방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던 정중부의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시기였다.

1174년 서경유수 병부상서 조위총이 난을 일으켰다. 진압군을 파견했지만 조위총 군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대규모의 진압군이 서경으로 출발하고 난 후 개경에서 훈련 중인 군사들을 독려하러 간 이의방은 정중부의 아들 정균의 칼에 무참히 살해되고 말았다. 전날 밤 적성이 떨어지는 꿈을 꾼 무비는 이의방에게 몸조심하라는 전갈을 보냈지만 이미 살해당하고 난 후였다. 무비는 저자거리에 버려진 두 번째 남편 이의방의 시신을 거둔 후 머리를 깍았다. 한 나라 임금과의 열렬했던 사랑, 그리고 연인이었던 임금을 죽인 최고 권력자와 사랑을 나누었던 그녀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호에 계속>

김 성 철
남해유배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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