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정대부 교지ㆍ도훈장 임명장ㆍ성주독 등 고문서와 유물 이채로워
밀양박씨 입남조 취재과정에서 400여년 전부터 한 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문중의 종갓집이 있다는 소식을 받고 달려간 곳은 설천 고사마을에 있는 밀양박씨 규정공파 현감공 문중 종갓집이었다.
앞쪽으로 족히 수백년은 돼 보이는 정자나무를 두고, 마을 가운데쯤에 터를 잡고 있는 밀양박씨 현감공 종갓집은 조용하고도 근엄한 분위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종갓집에서 기자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분은 현감공 문중 종갓집 장손이자, 입남조 환(桓) 할아버지의 17대손인 박대곤(72) 어른이었다.
대곤 종손은 “집안기록에 따르면 1500년대 중반께 입남조 할아버지가 남해 현감으로 오시면서 서면 대정에 사셨는데, 그 할아버지의 4대손인 유현 할아버지가 1620년쯤에 고사마을의 정씨 집안으로 결혼을 해 이 터에 살기 시작했다고 하니, 우리 문중의 종손들이 여기에서 살아 온 지 400년 가량 된다”고 했다.
대곤 어른이 살고 있는 집은 한 문중의 종갓집답게 많은 고문서와 유물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가 마루에 걸려 있는 대곤 어른의 5대조인 채안(采安) 할아버지께서 마을 현감으로부터 전수받은 ‘도훈장’임명장이었다. 도훈장은 당시 지방유림의 교육을 관할하는 직책이었다.
또한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기록인 분재기(分財記)도 눈에 띄었다. 재분록이라 부르기도 하는 분재기 작성은 조선시대 사대부집안에서 많이 행해졌던 일이라고 하니, 이 문서 또한 족히 300년 남짓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청 마루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성주독도 눈길을 끌었다. 생긴 모양새부터 남다른 이 성주독에는 지난 가을 첫 수확한 나락이 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집안에서 무엇보다 귀한 유물은 6대조 원규(元奎)할아버지가 광서8년(1882년) 6월 고종임금으로부터 받은 통정대부(通政大夫) 교지다. 이 교지는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이 지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조사한 ‘경남 서부지역의 고문헌2’에 기록돼 있다. 이 외에도 박대곤 씨의 집에는 62점의 고문서가 더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밖에도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세월의 흔적이 물씬 묻어나는 보첩과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서예작품에서도 한 문중의 종갓집 분위기는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박대곤 씨는 “우리 집안이 50권이 넘는 밀양박씨 총보 중에서도 1권 앞쪽에 나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전체 밀양박씨 중에서도 상당한 종갓집임을 짐작 할 수 있다”며 “입남조 할아버지부터 오늘날까지 400년 가까이 양자 한명 들이지 않고 가문의 대를 이어온 것도 조상의 은덕 때문”이라며 문중의 자긍심을 조심스레 내비치기도 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종갓집 취재를 마치고 마을 정자나무 곁을 지나니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뭇가지가 무성하고 물이 멀리 흐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