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패륜아 충혜왕과 경화공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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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패륜아 충혜왕과 경화공주(1)
  • 김성철
  • 승인 2013.04.04 11:45
  • 호수 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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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관장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37

▲ 김성철
남해유배문학관 관장
1330년 2월, 심양왕 일파의 끊임없는 집권욕에 염증을 느낀 충숙왕은 장남 정에게 왕위를 양위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충혜왕은 향락과 여색에 빠져 정사는 뒷전이었다. 배전을 비롯한 간신들에게 정사를 맡기고 자신의 행적을 기록하는 사관들을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

1332년 2월, 원나라 순제는 2년 동안 왕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충혜왕을 연경으로 소환하고 충숙왕을 복위시켰다. 충혜왕은 겉으로는 근신하는 척하며 안으로는 위구르족 친구와 여인에게 푹 빠져 날건달로 불렸다. 순제는 1336년 12월 4년 10개월만에 충혜왕을 고려로 돌려보냈다.

1339년 3월, 충숙왕은 장남이 못마땅했지만 왕위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고려의 통보를 받은 원나라 승상 백안 등은 충혜왕의 자질을 거론하며 심양왕 고를 지지해 8개월간 원의 책봉문을 받지 못했다. 충혜왕은 이런 사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스물다섯의 건장한 육체를 불태울 궁리만 했다.

“홍융의 둘째부인 황씨가 천하절색이라고 합니다. 자색이 워낙 뛰어나 집밖에 일체 나가지 못하게 하고 친척이 와도 방 안에 두고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니 한 번 만나보심이 어떠하겠나이까?”

환관 최화상의 말을 들은 충혜왕은 어머니 공원왕후의 형제인 외삼촌 홍융이 비록 고인이었다고는 하지만 외숙모인 황씨를 겁탈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그리고 다음으로 노린 상대는 죽은 아버지의 후비들이었다. 아버지 충숙왕의 제5비였던 수비 권씨는 1339년 5월 아들뻘 되는 충혜왕에게 강간 당한 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여 이듬해 자살하고 말았다. 또한 8월에는 아버지의 제3비 경화공주를 강간했다.

경화공주는 원나라 귀족인 백안 씨 집안으로 이름은 홀도이다. 충혜왕은 과부가 된 젊은 경화공주를 위해 영안궁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왕이 자신을 위해 잔치를 베풀자 답례잔치를 연 것이 화근이었다.

충혜왕은 술 취한 척하며 영안궁에 머물다 밤이 깊어지자 경화공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충혜왕은 자신의 뜻을 받아줄 줄 알았던 경화공주가 거세게 반항하자 오늘 거사에 실패하면 낯을 들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수하인 송명리 등을 시켜 경화공주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붙잡게 한 뒤 자신의 욕정을 채웠다.

자신의 외숙모, 아버지의 여자들까지 서슴지 않고 강간했던 충혜왕에게 신하들의 아내나 민간 아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시 유성에게 술을 먹이고 아내 인씨를 겁탈했고, 장인 홍탁의 후처 황씨와도 간음했다. 충혜왕은 정력이 강해지는 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그와 관계를 가진 여자들은 임질에 걸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충혜왕의 엽색행각은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원나라 귀족의 딸로서 충혜왕에게 당한 수치심에 치를 떨던 경화공주는 원나라로 돌아가 복수할 결심을 했다.

충혜왕은 경화공주의 계획을 알고 말을 살 수 없도록 마시장을 폐쇄했다. 경화공주는 충혜왕의 복위로 인해 심양왕 고와 함께 원나라로 돌아가던 조적에게 충혜왕의 폐륜을 얘기했다. 조적은 충혜왕을 몰아내고 심양왕 고를 고려국왕으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조적의 난은 실패했고, 경화공주는 만호 임숙의 집에 연금되었다.

1339년 11월, 고려국의 사정을 정확히 몰랐던 원나라 황실에서 중서성 단사관 두린과 직성사인 구통을 개경에 보내 충혜왕에게 국새를 내려 복위를 인정하고자 하였다.

원나라 사신 두린은 충혜왕을 만나기 전에 경화공주를 만나 원나라 황제가 보낸 술을 권했다. 기회를 기다리던 경화공주는 귓속말로 충혜왕이 자신을 강간한 사실과 연금된 이유를 말했다. 두린은 충혜왕에게 옥새를 주어 안심시킨 후, 김지겸을 임시국왕으로 앉히고 충혜왕을 비롯한 간신들을 모조리 포박하여 원나라로 압송했다. 두린은 옥새를 경화공주에게 주었다. 고려국의 정권은 경화공주에게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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