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런 일이 좋아?
상태바
당신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런 일이 좋아?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3.04.04 13:49
  • 호수 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향人남해 - 4편 수요일12시 일본대사관 앞의 당찬 희망, 윤미향 대표

목사 꿈꿨던 맹랑한 소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를 아시나요. 그건 바로 23년전 수요일에 시작돼 매주 수요일 낮 12시마다 일본대사관앞에서 당당한 할머니들과 함께 펼쳐지는 ‘수요시위’다.

▲ 여성의 몸에 일어난 전쟁을 보여주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0년 11월 16일 만들어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문제의 해결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전쟁으로 인한 여성폭력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진 단체다. 이 단체는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안다고 착각하거나 혹은 그래서 더 모른척하고 덮어두고 싶어 하는 우리 역사의 아픔인, ‘일본군 위안부’라는 잘못된 용어로 더 알려져 있는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할머니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23년간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열고 있다. 이러한 치열한 눈물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오고 있는 윤미향 상임대표, 그녀가 말하는 인간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남면 단항리 우형마을에서 네 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윤미향(50) 대표의 어렸을 적 꿈은 목사였다. 모태신앙이었던 그녀는 “여자 목사가 돼서 가난한 농촌마을을 살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꿈은 뛰어난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부모는 넉넉한 농사꾼이 아녔죠. 그래서 저 또한 밭일 돕기부터 밑으로 셋 있는 동생들 똥기저귀 갈아주고…얼마나 놀고 싶었겠어요. 어떤 날은 일부러 동생 엉덩이 꼬집어 울려서 엄마한테 살짝 맡기고 쉬기도 했죠”

그랬던 시골소녀가 지금은 목사님도 못하고 시인도 감당하기 힘든 숱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어주고, 나아가 한국을 넘어 세계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온 생을 바치고 있었다.


남명초 졸업 후 해성중을 다니던 중3 때 한 번의 변화가 인다. 가족모두가 함께 수원시로 이사를 떠난 것.

윤 대표는 “문화적 충격이었죠. 담임선생님은 시커먼 애가 사투리 쓰면서 들어오니까 ‘넌 노래도 사투리로 하니?’하고 묻대요. 공부 잘하는 서울 애들에게 뒤처지기 싫어서 악착같이 공부하고, 사투리도 고치고…무엇보다 소중했던 건 고등학교 때 만난 조기철 선생님과 단짝을 통해 역사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했던 것이다”라고 했다.

저는 길거리에 남겠습니다

▲ 박물관 2층의 추도관에서 윤 대표가 강덕경 할머니께 꽃을 드리고 있다.
윤미향 대표는 목사의 꿈을 품고 한신대 신학과를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늘 의문은 있었다고 한다. 종교든 운동이든 어떤 분야에서건 왜 여자들은 보조적인 수단에 그치는 걸까 하는 물음. 그러던 중 이화여대 대학원을 갔고 그곳에서 우연찮게 ‘기생관광’의 실태를 듣고 정신적 충격에 휩싸였다고.

윤 대표는 “자괴감에 빠졌다. 가난으로 많이 배우지 못한 농촌여성들이 도시 공장으로 돈 벌러 왔다가 외로움으로 남자 품에 기대게 되고, 그 남자가 떠나버리면, 버려졌단 패배감으로 쉽게 다방이나 성매매업소 등 유혹의 길로 빠져들게 되는 미처 몰랐던 현실에 괴로웠다. 또 미군 기지촌이나 일본 기생관광이야말로 현대판 성노예구나. 과거에 그렇게 당해놓고도 또 딸들은 외화벌이의 도구로 이용당하는구나. 사회에서는 성매매 시스템을 태연스럽게 구비해놓고 위기에 빠진 여자들이 그 안에 철커덕 빠지게끔 하고는 사회문제로 터지면 여성개인의 탓으로 몰아가는 현실에 힘이 쭉 빠졌다”고 했다.

목사시험을 며칠 앞두고 결심을 해, 지도교수에게 ‘어차피 목사는 넘치는데, 저는 길거리에 남겠노라고’선언했다. 그렇게 여성문제에 파고들기 시작하자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할머니 문제야말로 우선 풀어나가야 할 시대과제였다고. 그래서 정대협의 간사직을 맡게 됐고 할머니들과의 아프지만 굳세게 걸어가야 할 동행은 시작됐다.

1992년 1월 8일 가진 첫 수요시위에서 일본정부에게 7가지 요구사항(1.전쟁범죄 인정 2.진상규명 3.공식사죄 4.법적배상 5.전범자처벌 6.역사교과서에 기록 7.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을 들고서 문제해결을 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홀로 지내는 생존자들을 위해 공동주거공간으로 쉼터 ‘우리집’을 운영해 심리치료와 한방치료 등도 병행하고 있고, 2003년부터 9년 동안 펼친 모금과 건립활동 끝에 지난해 5월 5일, 평화와 인권을 위한 행동하는 박물관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열었다.

도덕적으로 부자인 나라 꿈꾼다

그녀는 많이 울었다. 많이 울 수밖에 없는 일, 지난해만 해도 5명의 할머니들이 돌아가셔서 ‘시간과의 싸움’에 속수무책으로 지치는 날도 많다.

윤 대표는 “많이들 물어요. ‘당신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 일이 좋냐’고.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었을 때도 다시 오게 한 건 할머니들과의 약속이었거든요. 살아생전에 일본정부의 정식사죄를 받게 해 드려야 하는데, 정말 애가 타요. 역사는 곧 그 국가의 미래와 연관돼 있으니까요” 이어서 그녀는 “과거를 잘 살아야만 우리 미래 자손들에게 짐이 줄죠. 경제적 성장만 운운하는데 도덕적으로 부자인 나라에 대해선 왜 고민하지 않는지 답답해요. 세계화가 뭐죠? 이웃나라와의 벽이 점점 없어지고 그만큼 관계가 중요한 거죠. 다른 것 다 잘해도 도덕적으로 빵점이면 국제사회에서 일본처럼 비난받게 된다”고 말하며 한국군이 베트남 참전시 저지른 만행 또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그녀의 꿈은 나비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1층에 놓여져 있는 ‘나비기금’ 상자는 ‘전시 성폭력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마련된 기부의 공간이다. ‘나비’는 모든 여성들이 차별과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빌면서 담은 상징물이라고 한다. 희망을 싣고 떠나는 나비의 여정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후원계좌(국민은행 488401-01-222978 나비기금)로 입금 후 연락(☎02-392-5252)주면 된다.

한편 지난달 31일, 제18회 ‘늦봄 통일상’의 수상자로 윤미향 대표가 선정됐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늦봄 통일상’은 사단법인 통일맞이(이사장 이창복)가 늦봄 고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려 민족화해와 통일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통일맞이는 윤 상임대표가 지난해 1천번째 수요시위를 통해 민족의 강인함을 보여준 점과 전쟁과여성박물관 건립 등 평화운동의 지평을 넓힌 점,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 민족공동의 이익을 들고 연대에 나선 것을 높이 평가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목사를 꿈꿨던 당찬 소녀가 23년 후 목사님께 봄 같은 평화상을 받은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