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 아빠는 배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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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 아빠는 배 만드는 사람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3.04.25 18:08
  • 호수 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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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人남해 - 5편 1500척의 배 건조…현대중공업의 전설, 장명우 향우

가족이 있었기에 군더더기 없이, 순수하게 전진할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의 전설이 된 남자, 가족을 위해 사랑을 다시 배우다

현대중공업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장명우(70) 향우. 현대중공업 부사장까지 지내다가 퇴임한 그를 만나러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았다. 거실에 들어서니 탁 트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일에 빠져 별 보고 나가서 별 보고 들어오는 게 인생의 대부분이었던 그가 이제는 아내 최옥순 여사와 함께 바다를 보며, 손자 사진을 보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스스로도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이 여유가 어색한지 웃으며 그는 말한다.

“배와 함께 산 세월이 대부분이었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맡은 일에 최고가 되는 것과 자기가족을 지키는 것 이 두 가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결심하면서 살아왔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일에는 충분히 정열을 쏟은 것 같은데 가족과는 체온을 나누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굉장히 많다. 사실 고백컨대 지금하려해도 습관이 안 돼 있어서 그런지 영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을 책임지고 사랑하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물거품이 된 육사의 꿈. 하지만 방황은 길지 않았다

도마초 12회와 남해중 9회, 남해농고 12회 졸업생인 장명우 향우가 처음부터 배와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고현면사무소 서기였던 아버지와 몸이 편찮으셨던 어머니. 3남1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어려운 살림에 대학갈 처지조차 못돼 육군사관학교 가서 바로 돈 벌자 결심하고 맘 맞는 친구들과 육사 준비를 했다고. 그런데 그만 신체검사에서 키 미달판정을 받고 좌절을 했단다.

죽었다 깨어나도 육사는 안되는구나 싶은 마음에 망연자실해 있었다고. 대학 못 간 채 그저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가고 풀이나 베었단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도 보기 싫더라고. 이발도 안 해서 머리도 이만큼 치렁치렁 길었지. 그렇게 반 폐인처럼 산에 있는데 도마초 가을운동회 날이었지. 시끌시끌해. 동생 녀석들 몇이 날 찾아와서 교장선생님이 날 부른다는거야”

그렇게 응급처치로 긴 머리카락은 보릿대 모자 속에 대충 숨기고 갔더니, 교장선생님의 첫마디가 “너 대학보내기로 했다. 형편이 어려우면 옆에서 다 도와주기로 했으니, 너 이제 그러고 다니지 마라”하셨던 것. 그길로 책상 하나 달랑 들고 집에서 나와 건너편 닭 키우던 친구집에서 딱 석 달 공부하고, 대학시험을 쳤다고 한다.

처음엔 기계과를 꿈꿨다가 당시 남해읍에 있었던 남해극장의 외동아들이던 하문천이란 친구가 집에서 조선공학과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원서를 바꾸자는 통에 본인이 부산대학교 조선공학과를 가게 됐다고.
과수석으로 입학한 그때부터 정말 배와의 떼래야 뗄 수 없는 긴 인연이 시작됐다.

말단 기사부터 부사장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부산의 자랑인 광안대교와 무너진 성수대교를 다시 튼실하게 제작한 것도, 다 그의 작품이다.

또한 우리나라 국적선인 석유 시추선 ‘두성호’역시 그가 대우조선 재직당시 만들어 산업훈장까지 받았다.
대우조선과 삼성조선, 현대중공업까지 대형 조선소의 전무를 다 맡은 이력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총1500척 가량 건조했다.

그는 현장의 말단부터 용접ㆍ배관 담당기사를 거쳐 전무, 부사장까지 올라왔기에 그 누구보다 ‘사람’을 많이 남겼다. 모자를 둘러쓰고 등산이라도 갈라치면 몇 미터 못가 인사하는 사람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얼쩡얼쩡 했다간 백발백중 들키고 만다는 그.

이처럼 퇴직이후에도 문턱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찾는 이가 많은 비결은 과연 뭘까? 그는 답을 현장에서 찾았다. “일꾼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작업자들과 늘 같이 생활했으니까. 아무래도 같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뛰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의 자질은 열정…목표는 순수할 때 목표다

그렇다면 그가 현장에서 오래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뭘까? 바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과 함께 순수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 최옥순 씨가 말하는 남편 장명우 씨는 “일만 할 줄 알았지 동사무소나 은행 한번 안 가본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결혼하고 지금까지 내가 얼마를 받는지 궁금해본 적도 없다. 그저 월급봉투째 그대로 부인한테 맡겨서 돈 세어본 적도 없다. 후배들이 내게 왜 사업을 안 하냐고 할 때마다 난 보통예금과 정기적금 말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그는 “일도 사람관계도 다 순수한 목표여야지, 말은 목표와 소망이라면서 거기에 누더기가 붙어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예를 들어 자동차를 잘 만들어야겠다 하고 만들면 되는 거지, 내가 자동차를 잘 만들어서 내가 그걸로 부자도 되고 뭐도 돼야지 하는 누더기가 붙어버리면 인생이 더럽혀진다. 동창회 또한 마찬가지다. 동창회의 목표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순수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모교에서 배우고 있는 후배들이 나보다 더 순수한 전문가가 되도록 선배로서 격려해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창회의 목표지, 끌어주고 밀어주고, 뭔가 모의하러 오는 건 당초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열정이야말로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게 하는 열쇠임을 강조했다.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결국 일을 관철시키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건 튀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묵직한 열정이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열정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한결같이 가슴에 품고 온 좌우명, 참 사람이야말로 참 일꾼이라는 진인진업(眞人眞業)이라는 말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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