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토벌 나섰던 봉춘 할아버지 600여년 전 대곡에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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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토벌 나섰던 봉춘 할아버지 600여년 전 대곡에 정착
  • 한중봉 프리랜서기자
  • 승인 2013.05.09 10:58
  • 호수 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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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남성씨 발자취를 찾아서 7 장수이씨 정언공파 남해문중

문무(文武) 겸한 명문(名門), 가문 빛낸 인물 많아 자긍심 높아

장수이씨의 시조인 이임간(李林幹 1262~1327)은 경주이씨 51세 이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시호는 문정공이고 호는 일헌(一軒)으로 1282년(고려 충렬왕 8년)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오래 지나지 않아 한림독사와 시독독사의 관직을 거쳐 1312년 예부상서로 임명돼 한림학사를 겸임했다.

고려 충목왕조에 문하시중평장사로 정승이 됐으며, 장천부원군에 봉군됨으로써 관향을 장천(지금의 장수)으로 가문을 세웠다.

장수이씨는 정언공파와 양후공파로 분류되는데, 대마도 정벌로 역사에 기록되어져 있는 이종무 장군이 양후공파 파조이고, 종무 장군의 형님되는 이종화가 정언공파 파조다.

정언공 이종화는 1376년(고려 우왕2년)에 과거에 급제해 조선 태종조에 우정언, 정언, 좌정언, 헌납 등 주로 대간의 관직을 맡았다. 남해에 거주하는 대다수 후손은 정언공파에 속한다.

▲ 지난해 종친들의 뜻을 모아 고현 대곡마을 화심곡에 세운 입남시조 유허비와 헌성비.

장수이씨 입남기

장수이씨조의 6대손인 입남조 봉춘 할아버지는 정언공의 아들로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인 조선 세종때 평산만호로 입남했다.

입남조 봉춘께서는 태종조 영사를 지내셨는데 당시 남해연안의 조선백성들은 왜구로부터 극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이를 보다 못한 세종은 봉춘의 숙부인 이종무 장군에게 대마도 정벌의 칙령을 내렸고, 봉춘은 숙부가 지휘하는 이 원정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입남조 봉춘은 그 후에도 남해 연안에 머물며 왜구의 동태를 살피던 중 조정으로부터 평산만호라는 관직을 하사받고 산수 좋고 해산물이 풍부한 남해를 노후의 안식처로 여기고 가솔들을 이끌고 고현 대곡에 정착한 것이 장수이씨의 입남기다.

▲ 장수이씨 남해문중의 재실인 경모재. 역시 화심곡에 건립돼 있다.
가문을 빛낸 인물

입남조의 후손 중에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경상우도 절도사와 주문사가 돼 명나라 북경에 다녀온 바 있는 대사헌 율탄정 이충걸, 청계서원에 모셔진 임진왜란 의병장 이삼로 등이 있다.

후손 중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난계 이희급 선생이다. 이희급(1553~1597)은 이동면 난양마을에서 태어나 1576년(선조9년)에 사마시에 급제하고, 1582년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정자 저작박사를 시작으로 함양군수가 됐으며, 임진왜란으로 함양이 함락되자 경상도사로 임명돼 의병을 모아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

지금은 이동 난곡사에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지방 유림들이 매년 3월10일에 제례를 올리고 있다.

근대사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소청 이예모와 근대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라 칭송받는 이중섭, 밤안개의 작곡가 이봉조, 시나리오 작가이자 사향록을 펴낸 남해향토문화연구회장 이청기 등이 있다.

현존하는 인물로는 헌정회장을 지낸 이상민 전 국회의원, 이천근 장군, 이 삼 전주지검차장, 이석준 경제기획원 차관, 이철기 천도교령, 이태율 6·25 참전대령, 월드컵 축구스타  이정수 선수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남해군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로는 남해문화원장이자 현 남해향교 전교 이동선, 이길근 전 군의원, 시조시인 이처기, 이주홍 군의원 등이 있다(전현직 포함, 무순임)

남해ㆍ하동ㆍ함양 등지에 거주

장수이씨들은 남해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널리 퍼져있다. 군내에는 고현, 대곡, 대계, 선원, 포상, 오곡, 천동, 이동 초음, 성현, 다천, 석평, 난음, 읍 차산, 아산, 외금, 미조 천하, 서면 유포, 우물, 삼동 동천, 내산, 금송, 설천 문항, 남양, 금음, 남면 오리 등지에 살고 있다.

또한 인근 하동의 악양, 화계, 양포, 금남에도 많이 살고 있으며, 금남면 대도는 거의 대부분이 장수이씨 가문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서울과 함안, 사천, 김천, 장수, 철원, 창원 등지에 살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대략 3천여 가구에 1만3천여명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80%가 경남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후손들은 매년 음력 10월 10일 고현 대곡마을 재실 경모재에 모여 시제를 올리고 있다.

지난해 장수이씨 종원들은 “명가 집안의 명당에 명품비를 건립하여 명품 인재를 길러내자”는 슬로건으로 종친들의 뜻을 모아 고현면 대곡 산 1번지 화심곡에 입남시조 유허비와 헌성비를 세웠으며 ‘후손을 큰 사람으로 키우자’는 마음을 모아 장학재단(위원장 이재신, 사무국장 이춘송)을 설립해 놓고 있다.

입남성씨에 대한 설명을 맡아준 이영태 전국대종회 부회장은 “우리 가문은 고산 11세 삼노 할아버지가 장조카 운창 이시분 할아버지에게 남긴 ‘관서(寬恕), 즉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며 너그럽게 용서할 줄 알라’’는 소통의 가훈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다”며 “모든 종원들이 가문에 대한 애정과 서로 돕고 사는 아름다운 미덕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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