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ㆍ의료ㆍ교육분야 약진한 인물 많아 ‘명문가’ 자부심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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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ㆍ의료ㆍ교육분야 약진한 인물 많아 ‘명문가’ 자부심 대단
  • 한중봉 프리랜서기자
  • 승인 2013.05.30 10:02
  • 호수 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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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족보 만들고 뿌리교육 통해 후손들에게 조상 정신 본받게 해

입남성씨 발자취를 찾아서 9 - 나주임씨 정자공파 남해문중

 

임씨의 유래와 관련한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전 요 임금시대에 한 신인(神人)이 중국 대원현의 노거수 쌍목 밑에 하강했으므로, 두 그루 나무를 상징해 그 신인에게 임(林)씨 성을 사성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임씨 원조 임비(林庇)는 고려 충렬왕조 대장군 9세손 임탁(林卓)공이 송도(지금의 개성)에서 나주로 은둔하면서부터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기에 따르면 임탁공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출사(出仕)하지 않고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나주임씨 입남기
임비 원조의 19세손인 입남조 귀유(貴儒)공은 고려부호군에 봉해졌으며, 대략 500여년전 입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귀유공이 남해로 온 까닭은 구체적으로 기록되거나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없으나, 고조고(高祖考)인 휘 붕(鵬) 귀래정(歸來亭)공께서 예조판서까지 지낸 것으로 보아 명문 가문의 후손일 것으로 짐작되나 당시 어지러운 정국에 연관돼 남해로 온 것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남해로 온 귀유공께서 지금의 읍 마산마을에 정착해 농사와 학문을 겸하며 지낸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묘소 또한 마산 뒤 산록에 있다.

입남조의 후손으로는 아들 호길과 손자 선제ㆍ인석, 증손자 광혁ㆍ장수 할아버지 등이 계신다 이 중 광혁 할아버지가 당시 왜구들의 잦은 해안가 침탈을 피해 읍 죽산에서 산골 오지인 서면 연죽으로 옮겼는데, 이 때부터 연죽마을에는 신씨와 더불어 임씨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병한 선생 모신 영벽정
임씨의 유적으로는 서면 연죽 마을 뒤에 있는 향토유적 영벽정(映碧亭)이 있다. 이 곳은 조선말기의 학자 회정(晦亭) 임병한 공을 봉안한 곳이다.

연죽리에서 태어난 공은 당시 중국에서 유학, 성리학을 깊이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러한 공의 명성은 국내보다 중국에서 더 널리 알려져 약 100년 전 중국 행성부 공교총회의 결정에 따라 공의 인품과 학식을 기리는 마음을 담은 영벽정을 건립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곳에서는 음력 4월 상정일(음력으로 매달 첫째 드는 정(丁)의 날) 석채례가 봉행되고 있으며, 한 때는 많은 유고집이 보관돼 있었으나 현재는  연세대, 고려대 등 각 대학에 소장돼 있고 영벽정에는 세 권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남해문중사람들은
임씨는 우리나라 280여 성씨 중 열 번 째로 그 인구수가 많은 대성이자 명문가로 관향(貫鄕)은 다르게 쓰고 있으나 동계혈족으로 조상은 한 뿌리로 돼 있다.

5년전 성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씨 인구수는 95만6천여명이며, 현재 남해에는 대략 130여호에 336명 가량이 살고 있다고 한다. 군내 집성촌은 서면 연죽, 남해읍 일원, 남면 유구, 창선 일원, 삼동 지족ㆍ금송, 고현 오곡, 이동 용소 등이며, 하동과 삼천포, 부산, 광주, 나주, 함양 등지에도 남해문중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후손들은 2000년 9월, 입남조가 남해에 정착한 최초의 터전인 읍 마산마을에 종친회 회관과 재실 청림재(淸林齋)을 건립했고, 매년 음력 10월 15일 입남조 내외와 자손 126위의 시제를 모셔오고 있다. 일년에 한 차례 열리는 문중회의 또한 이 날 열린다.

또한 나주임씨 후손들은 선조의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전자 족보를 만들었는데, 이 전자족보는 군내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아울러 종원들의 어린 자손들을 모아 뿌리 교육과 나주 대종가와 도선묘 순례 참배를 하면서 조상의 유업과 정신을 본받는 사업도 활발히 펼쳐오고 있다.

이 밖에도 연죽공원묘지 1500평에 평장묘역을 조성하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이장하는 일을 펼치고 있다. 또한 각계 소파별로도 평장묘역을 조성해 앞서가는 장묘문화를 앞장서 실천해오고 있다.

남해문중을 빛낸 인물은
나주임씨 정자공파 남해문중은 법조ㆍ의료ㆍ교육 분야에서 약진한 인물들이 많아 ‘명문가’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먼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3성 장군이자 해병연합사령관을 지낸 임종린, 조계종 종정 진제대선사(속세명 임기택)가 있고, 임채진 검찰총장, 임선화 부산지검 검사, 임경섭 부산지법 판사, 임상우ㆍ임수연ㆍ임현섭 변호사가 법조계에서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다.

또한 의료계에는 임준형ㆍ임수진ㆍ임정형ㆍ임선형ㆍ임문섭ㆍ임진경 의학박사와 임재형 한의사가 있으며, 임영훈 경제기획원 관료도 가문의 자랑으로 꼽히고 있다.

아울러 임채운(청와대 근무), 임현용(금융계종사), 임성원 선박검사관, 임선택 한진해운 선장, 임성택 부산해운대통장, 임삼남 국립수산검사소포항출장소장, 임성진 동부종합폐차장 대표, 임무길 폴리닉스대표 등이 있으며 임진형ㆍ임경택 교수, 서예가 임형택, 임춘덕 군산보호관찰소 과장 등이 있다.

청고근졸의 종훈 높이 받들어
남해문중 사료 수집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는 임준택 나주임씨 남해ㆍ하동ㆍ삼천포 종친회장은 “우리 종원들은 ‘깨끗한 뜻을 높이 지니고 스스로 삼가며 겸손하라’는 청고근졸(淸高謹拙)이라는 나주임씨 종훈과 ‘같은 샘, 한 뿌리, 우리는 하나다’란 선조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살아가고 있다”고 전하고 “우리 후손 모두 시회적으로 열심히 활동해 임씨 명가의 얼굴을 높이는 동시에 더욱 조상을 섬기고 일가끼리 우애 깊게 살아가는 울창한 숲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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