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급 제각 풍계사에 숭조목종(崇祖睦宗)의 정신 녹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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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급 제각 풍계사에 숭조목종(崇祖睦宗)의 정신 녹아 있어
  • 한중봉 프리랜서기자
  • 승인 2013.06.13 10:30
  • 호수 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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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남성씨 발자취를 찾아서10 문화류씨 충경공파(忠景公派) 남해문중

550여년 전 군수공 휘 윤(綸) 입남…사회발전 기여한 인물 많이 배출돼

문화류씨에 대해 말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류권수 전 종친회장이 가장 먼저 꺼내 든 이야기는 제각 풍계사(豊溪祠)에 관한 것이었다.

문화류씨 충경공파 남해 종중 모두가 ‘문화재급’이란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풍계사는 한국전통 이익공식(二翼工式) 팔자형 지붕으로 본채 20평, 아래채 배집형 솟을 대문 12평 한옥으로 2003년 건립됐다.

건립비용만 해도 당시로서는 거금은 3억 2천만원 소요됐으며 강원도 자생의 육송과 고령 기와로 지어져 그 풍채가 예사롭고 기풍 또한 당당하다. 여기에는 대종친회 헌성금 1억5천만원 뿐만 아니라 남해군내외 문중에서 1억7천만원을 정성껏 모아 건립한 것이어서 그 의미 또한 남다르다.

‘자손이 번창하라’는 의미의 풍계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0일 입남조 후손 130 위패를 모시고 시제가 모셔지고 있으며, 종친회 정기총회 또한 매년 3월께 이 곳에서 열리고 있다.

문화류씨 충경공파 남해문중은 고려 개국공신 대승공(大丞公) 류차달을 시조로 황해도 신천군 문화에 본관을 두고 있는 가문이다.

2011년 1월 4일 연합뉴스는 북한 사회과학원이 `문화(文化) 류(柳)씨' 시조인 류차달(柳車達)의 묘를 발견해 국가보존유적으로 등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고 전하고 있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이 묘는 황해남도 삼천군 달천리 구월산 기슭의 달천온천 인근 마을에서 4개의 비석, 망돌(맷돌), `묵방사라는 건축물' 등과 함께 발견됐다.

류차달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할 때 수레 1천대로 군량미를 공급한 공을 세워 벽상공신 `대승공'에 봉해졌고, 이때 `차달'이란 이름도 하사받은 것으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기록돼 있다.

▲ 류기춘 현 종친회장과 류귀주ㆍ류우석ㆍ류권수 전 종친회장(사진 왼쪽부터)이 문화류씨 남해문중 제각 풍계사를 둘러본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입남조에 대해

입남조 휘 윤(綸)은 시조 류차달의 16세손이다. 조부 위 양(亮)은 조선조 예문관 대제학과 석의정을 지내고 문성무원군에 봉해졌으며, 충경공이라는 휘호를 받아 충경공파의 파조가 됐다. 또한 윤(綸)의 부 휘 한생(漢生)은 사헌부 지평(持平)과 왕실의 계보편찬과 왕실의 허물을 살피는 종부시 소윤(少尹)과 봉정대부를 지냈다고 한다.

입남조 윤(綸)은 소윤공의 6남중 차남으로 협천군수를 지낸 탓에 군수공이라 불리운다. 군수공은 1456년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을 부당하게 여겨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려는 마음으로 신분을 감추고 남해군 설천면 모천으로 옮겨 살게 됐다고 한다.

입남조 윤(綸)은 숙부인 행주(幸州) 기(奇)씨와의 슬하에 종(淙), 전(淸 ), 윤(潤)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종(淙)의 후손들은 설천과 남면 항촌에, 차남 전(淸 )의 후손들은 서면 정포ㆍ고현 도마ㆍ이동 석평ㆍ서면 서호ㆍ상주 일원, 삼남 윤(潤)의 후손들은 남면 항촌과 전남 순천 등지에 살고 있다고 한다.

남해에 사는 문화류씨 충경공파 후손들이 남해대종회를 창립한 것은 1945년 11월 4일로 거슬려 올라간다. 당시 남해읍 무진회관이란 곳에 모인 후손들은 창립총회를 열어 입남조 산소 시제를 남해대종문에서 합배키로 하는 한편, 그 날짜를 음력 10월 10일로 정했다. 이 시제일은 지금도 지켜져 내려오고 있으며, 현재는 31대 종친회장이 선출될 만큼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 후 1976년 남해읍 평현리 야촌533번지에 종친회관을 신축하고, 다시 12년 후인 1988년 읍 아산리 봉천 35~3에 새 회관을 신축했다.

아울러 1981년부터는 문화류씨 재남공무원친목회 주관으로 종족교육을 갖는 한편, 1995년부터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 전달하는 한편, 효자, 효부상을 만들어 전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종족교육과 장학금 전달사업, 효자ㆍ효부상 수여 등은 갈수록 문중 구성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재각 건립비용으로 문중 적립금이 소진되면서 지금은 행해지지 못하고 있으나 곧 다시 실행하기 위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눈에 띄는 부분은 종중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어른을 문장(門長)으로 추대해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데, 지금은 제16대 류정렬 옹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문을 빛낸 인물

문화류씨 남해문중의 인물로는 해양수산부 장관과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류삼남 해군 참모총장과 류영실 축협장, 류귀주 전 종친회장, 류지선 부산 해성종묘 대표, 류명규 노량승첩제전회장, 류기춘 전 부산수협 회장(현 종친회장), 류창봉 전 한농연 회장(현 종친회 총무), 류근수 전 서면군의원, 류낙렬 전 서면농협장, 류 향 서울용문사 주지, 류동길 숭실대학원 원장, 류민렬 경북 경산상공회의소 소장, 류근준 새남해농협장, 류중환 부산 목장원 회장, 류용식 전 종친회장 등 종친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가문을 빛낸 공로가 컨 종중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특히 남해향교 전교를 역임한 류우석 전 총친회장은 풍계사건립추진위원장, 류권수 전 종친회장은 풍계사건립추진위원회 총감독 겸 총무를 맡아 종친회 헌성금 모금과 제각 건립에 많은 힘을 기울이였으며 문중에서는 풍계사 건립에 이바지한 류삼남 전 해군참모총장의 공덕비를 세웠다.

이 외에도 문화류씨 문중에서 한학자가 많이 배출된 점도 자랑거리 중 하나다.

문중 소개를 맡아 준 류권수 전 종친회장은 “우리 문중은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숭조목종(崇祖睦宗) 종훈 아래 모두 우애좋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랑하고 “더욱 화목한 종친회를 위해 젊은 종중들이 시제와 종친회 행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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