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우왕과 영비 그리고 창왕의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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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우왕과 영비 그리고 창왕의 유배
  • 김성철
  • 승인 2013.07.11 10:01
  • 호수 3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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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관장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52

▲ 남해유배문학관 관장
“신의 딸이 아름답지도 않고, 또한 정실 소생이 아닙니다. 지존의 배필이 될 수 없사옵니다. 전하께서 꼭 왕실로 들이고자 하신다면 노신이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겠사옵니다”

청렴을 신조로 살았던 최 영은 자신이 왕실의 외척이 되는 것이 불편하여 거절하였다. 하지만 우왕과 부하 정승가ㆍ안소 등의 간곡한 설득에 못 이겨 딸을 왕비로 들여보냈다. 그 딸이 우왕의 제2비 영비이다.

1388년 3월에 왕비가 된 영비 최씨는 우왕과 찰떡궁합이 되어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3개월 후인 1388년 6월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이성계에 의해 최영이 제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성계 휘하 장수들은 대궐을 포위하고 영비를 내쫓으라고 요구했다.

“이놈들, 이미 영비는 짐과 일심동체다. 만약 영비를 내쫓는다면 나도 함께 가겠다”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음을 안 우왕은 영비와 연쌍비를 데리고 회빈문(會賓門)을 나와서 강화로 향했다. 그때가 6월 8일이었다.

우왕이 폐위되자 외동아들 창(昌)이 조민수(曺敏修)와 이색(李穡)의 추대로 보위에 올랐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창왕은 토지개혁을 주창하는 급진개혁파와 이를 저지하려는 권문세족의 후원을 등에 업은 온건개혁파의 싸움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의 허울 좋은 왕에 불과했다.

이성계, 정도전 등은 1388년 7월, 우왕의 유배지를 여흥(여주)으로 옮겼다. 그리고 전제개혁소를 올려 지나친 거부감을 표한 조민수를 탄핵하여 8월에 창녕으로 유배시켰다.

온건개혁파의 중심이었던 이색은 명나라의 힘을 빌려 이성계파를 견제하려했지만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향리인 장단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결국 이성계파가 정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창왕이 나이가 들면 아버지를 폐위한 복수전이 벌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성계, 정도전, 조준 등은 정몽주와 힘을 합쳐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는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논리로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후손으로 규정하고 창왕을 폐위시킬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오비이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다. 1389년 11월, 최 영의 생질 김저와 먼 친척 정득후가 유배 중인 우왕을 찾았다.

“답답하게 이곳에 있으면서 손을 묶고 앉아 죽음을 받을 수는 없다. 역사(力士) 한 사람만 얻어 이시중(이성계)만 해친다면 내 뜻은 성취할 수 있다. 내가 평소에 예의 판서 곽충보(郭忠輔)를 좋아하였으니 네가 가서 보고 이 일을 도모하도록 하라. 일이 이루어지면 비(妃)의 동생을 처로 삼고 부귀를 함께 누릴 것이다. 이번 팔관일(八關日)에 거사하도록 하라"

우왕은 울면서 칼 한 자루를 곽충보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저는 곽충보에게 우왕 복위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곽충보는 이성계에게 곧바로 우왕의 계획을 알렸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김저와 정득후는 이성계의 사저로 갔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김저의 이성계 암살사건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권문세족들은 대부분 유배되고 우왕도 강릉으로 이배되었다.

창왕 역시 왕씨가 아니라 신씨라는 주장에 의해 폐위되어 강화로 유배되고 말았다. 그리고 12월 모두 살해 당하고 말았다.

원천석(元天錫)은 그의 문집「운곡시사(耘谷詩史)」에 「듣건데 이 달 15일에 정창군이 즉위하고 전왕(前王) 부자는 신돈의 자손이라 하여, 폐하여 서인(庶人)을 만들었다 한다. 그래서 시 2수를 짓는다」는 제목으로 두 왕의 비운을 애달파 했다.

전왕 부자가 서로 여의니 / 머나먼 동쪽 서쪽 하늘가로다 / 그 몸이야 서인을 만들었으나 / 마음은 길이길이 변치 않으리

태조의 신령께서 하늘에 계셔 / 끼친 은택 이백년 흘러왔거니 / 진가를 가리기 어이 늦었나 / 저 하늘은 분명히 살피시리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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