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우왕의 죽음과 제2비 영비의 절의
상태바
고려 우왕의 죽음과 제2비 영비의 절의
  • 김성철
  • 승인 2013.07.18 09:40
  • 호수 36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철 관장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53

▲ 남해유배문학관 관장
이성계 일파가 제기한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의해 살해 당한 우왕과 창왕. 그들은 정변의 희생양으로서 1389년 공양왕이 즉위한 다음달 12월 14일 강릉과 강화도에서 두 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결국 우왕과 창왕은 위조(僞朝)로 폄하되었다. 그 뒤 우왕은 「반역열전」에 수록되었고 왕비들은 ‘고려사’ 「후비열전」에 수록될 수 없었다. 우왕의 제2비 영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 살에 왕이 된 우왕은 공민왕의 모후, 할머니 명덕태후 홍씨의 눈치를 보며 왕위를 유지했다. 워낙 어린 나이에다 명덕태후가 자신의 왕위계승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덕태후가 죽은 후 우왕은 나랏일은 이인임 등에게 맡기고 사냥과 여색에 빠져 살았다. 궁녀는 물론 민가의 여인도 미색이 뛰어나면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우왕은 최영의 딸이 미색이라는 것을 듣고 최영의 권력도 함께 제어할 요량으로 끈질긴 구애 끝에 왕비로 삼았다.

그 후 우왕은 의비 노씨, 숙비 최씨, 안비 강씨, 정비 신씨, 덕비 조씨, 선비 왕씨, 현비 안씨 등 아홉 명의 왕비를 뒀다.

영비는 최영의 첩의 딸로 정략적으로 우왕의 왕비가 되었지만 왕의 총애를 받았기에 우왕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많은 왕비를 새로 들이고 숱한 여인들과의 염문을 뿌렸던 지아비였지만 영비는 우왕을 끝까지 보살피며 1년 6개월간의 유배생활을 함께 했다. 우왕과 영비는 강화도, 여주, 강릉으로 옮겨 다녔다.

“우왕과 창왕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미 강릉에 안치시켰다고 명나라 조정에 알렸으니 중도에 변경할 수 없사옵니다. 더구나 신 등이 있사오니 우왕이 비록 난을 일으키고자 한들 무슨 걱정입니까”

사재부령 윤회종(尹會宗)이 상소를 올려 우왕과 창왕을 베기를 청하자 이성계는 이미 힘을 잃은 우왕을 살려두자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명분 쌓기용에 불과한 것이었다.

“우왕은 죄 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으니 스스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양왕은 지신사 이행(李行)에게 명하여 교서를 내렸다. 정당문학 서균형(徐鈞衡)을 강릉으로 보내 우왕을 베게 하고, 예문관 대제학 류구를 강화도로 보내 창왕을 베게 하였다.

「대동야승」권 11에 실려 있는 이육(李陸)의 「청파극담(靑坡劇談)」에는 젊은 영비 최 씨가 우왕을 구하려 하는 내용이 남아 있다.

처형 날 우왕과 함께 있던 최 씨가 몸을 날려 우왕을 구하려 하자 강릉의 아전이 옷자락을 잡아 우왕에게서 떼어내어 물리치니 영비가 큰 소리로 “늙은 놈이 어찌 감히 그 손으로 나를 더럽히느냐!” 하고 고함을 지르며 아전이 잡았던 옷자락을 찢어 버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오싹해 했다고 한다.

우왕이 죽은 뒤 “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우리 아버지 최영의 허물이다”며 10여 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밤낮으로 곡하였으며, 잘 때는 우왕의 시신을 끌어안고 잤다. 그리고 혹 곡식을 얻으면 정성껏 밥을 지어 올리곤 하여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가련하게 여겼다고 ‘고려사’에 기록하고 있다.

영비 최 씨는 수많은 여자를 품었던 우왕의 임종을 끝까지 지켜보며 마지막까지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죽은 시신마저 떠나보내지 못하고 함께 하고자 했던 영비 최 씨의 절의는 그녀가 아버지 최영을 원망했지만 할아버지의 유언을 끝까지 지켜왔던 아버지의 자식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왕의 아홉 왕비 중 영비만이 유배생활을 하며 고락을 함께 했다. 정비인 근비 이 씨는 아들이 왕위를 이어 받아 대비로 권세를 누렸지만 창왕이 폐위되면서 아버지 이림은 충주로 유배되고 자신은 폐출되어 서인으로 전락했다.

나머지 왕비들은 우왕의 폐위와 함께 폐출되어 서인이 되었으며, 오직 마지막 왕비 현비 안 씨만이 공민왕의 제4비인 정비 안씨의 후원으로 폐출되지 않았다. <다음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