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남조 다성(多省) 할아버지 후손들 ‘오순도순, 서글서글’ 우애좋게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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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남조 다성(多省) 할아버지 후손들 ‘오순도순, 서글서글’ 우애좋게 지내
  • 한중봉 프리랜서기자
  • 승인 2013.08.01 13:43
  • 호수 3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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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남성씨 발자취를 찾아서 14 남평문씨 서상종친회

시조와 본관

남평(南平)은 전남 나주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을 통일신라시대 경덕왕(742~765)이 현웅현(縣雄縣)으로 고쳐 무주(광주의 옛이름)에 속하게 했다.

고려조에서는 남평 또는 영평(永平)으로 불리었고 그 후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913년 전국명칭 개칭할 때 나주군에 합해져 지금의 남평면이 됐다.

남평문씨는 신라 자비왕 때 사람인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고 있다.

시조의 후손들

문씨 집안을 대표하는 후손을 꼽는다면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1329~1398)을 들 수 있다. 문익점은 1363년 좌정언으로 서장관이 되어 계품사 이공수와 함께 원나라에 갔는데 귀국할 때 원나라 수출금지품목인 목화씨를 들여와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부인의 고향인 산청에 재배해 뒷날 한국의료와 경제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또한 물레를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문래(文萊), 베 짜는 방법을 창안해 낸 것으로 전해지는 문영(文英), 선조 때 경상수군절도사 역임한 문재도(文載道), 임시정부 수립당시 국민의원 대표로 초대교통총장을 지낸 문창범(文昌範),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인 새국어사전을 편찬한 문세영(文世榮),  재야 사학의 선구자인 역사학자 문정창(文定昌) 등이 있다. 그 후손들은 지금 전국적으로 38만여명에 이르고 있는데, 성씨별 인구로는 21번째 된다.

▲ 남평문씨 집안에서는 2006년 문중의 납골평장 묘역을 조성해 귀감이 되고 있다.
입남조에 대해

입남조 휘 치손(致孫)은 어릴 적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용기와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임진왜란에 참전해 진주성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등에서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녹훈(錄勳, 훈공을 장부나 문서에 기록함)됐다. 임진왜란 후에 전승지인 남해 서상에 터를 잡아 노모를 모시고 봉양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후손들은 1913년 입남조 묘소에 처음 추모비를 세웠으며, 1992년 풍파에 마모된 비를 다시 세웠고 2006년 문중 납골평장 묘역 조성 때 또 다시 새 비석을 세워 숭조정신을 드높였다. 문중세가 번성할 때는 서면 서상에 35가구 150여명으로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15가구 40여명이 문장이자 종친회장인 문채조를 중심으로 문다성 시조로부터 45세손에서 49세손까지 오손도손 살고 있다.

세월이 흘러 서상 문중의 인구가 감소되고 선조들의 묘소가 남면 율곡, 나한방, 송전곡. 마전곡, 갈재, 선비당 등 각처에 흩어져 있어 성묘가 어렵게 되자 후손들은 2006년 선영을 서면 서상리 1555-2번지 일대(주암골)에 모아 문중 납골평장 묘역을 조성했다. 이 납골평장은 대략 7000만원의 예산이 소요됐으며. 200여평 규모에 384기를 안치할 수 있다고 한다.

입남조 치손 공의 배위(配位)는 순천박씨(順天朴氏)이고 아들은 외아들로 명세(命世)였다. 손(孫)은 동한(東漢, 작장후손), 이복(以福, 서상후손)으로 서면 일대에 후손을 번성케 했으며 지금은 입남조 14세손 문대진까지 413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가문을 빛낸 인물들

고인으로는 ‘안에서는 오순도순, 밖에서는 서글서글’이란 글을 남긴 아동문학가이자 오랫동안 경남문인협회 회장을 지낸 문신수, 군청재무과장을 지낸 문창옥, 사업가 문상종, 문부근 교장 등이 있다.

또한 현직에 있거나 퇴임한 사람 중에는 남해소방서 건립에 힘쓴 문원경 전 소방방재처장, 문복종(국제전기임원), 해인사 주지를 역임한 선용스님(문태성), 문춘원 판사(설천 남양출신), 문순상 화백, 문채석 남평문씨재부남해군종친회장, 문상실 남평문씨남해청년회장, 문재경(LG그룹 근무), 예비군중대장을 지낸 문부경, 서면사무소 산업팀장 문석종, 국세청에 근무하는 문국종, 사업가 문채공, 남해미래정책연구소 문준홍, 문채오 해경 경정, 문찬일 바래길사람들 전 사무국장, 문채열 사업가, 문극성(교육자), 문승욱 세무사, 문정용 남해군생활체육회 부회장, 문구일·문채수 교장, 문채길 경찰청 통신계장, 문주영 경감, 문철욱 대동농기계 대표이자 새남해라이온스클럽 회장, 문평석 케이티(KT)과장, 문치경 사업가, 문평수 사업가, 문평용 진주교도소 과장 등이 있다. <이상 무순 / 전현직 무관>

문중 소개 자료 준비에 힘쓴 향토사학자 문부경 씨는 “예로부터 우리 집안은 문인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모두들 큰 욕심없이 오순도순 살아오고 있다”고 자랑하며 “앞으로도 젊은 후손들이 시향을 비롯한 문중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료제공 = 남평문씨남해종친회 문부경>


삼동 고암마을 주민들이 문첨지 제사 지내는 이유는

남평문씨남해군종친회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실화 한 꼭지가 있다. 내용인 즉, “삼동 고암마을 주민들이 매년 4월 5일 한식날에 문씨 할아버지 한 분의 제사를 지낸다”는 이야기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인 1865년, 고암마을에 살던 문첨지 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마을에 전 재산을 기증했는데, 주민들이 그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마을회에서 주관해 동제 형식의 제사를 지낸다는 것.

고암마을 김범석 씨는 “문첨지란 분이 재산은 상당한 반면 후손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돌아가시면서 마을에 재산을 기부하게 됐고, 마을에서도 답례 차원에서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부터 묘소 벌초와 더불어 매년 4월 5일 한식날에 마을주민 대다수가 참여해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전했다.

마을에 재산을 기부한 문씨 집안 할아버지와 150년 가까이 제사를 지내온 고암마을 주민들의 정(情)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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