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라는 장벽, 뛰어넘는 용기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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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라는 장벽, 뛰어넘는 용기는 나의 힘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3.08.30 13:13
  • 호수 3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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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人남해 - 10편 김임권 대형선망수산업협동조합장

섬사람의 본질은 그 어떤 열악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것
수대 졸업 후 은행 들어간 ‘괴짜’, 역발상으로 위기극복한 500억대 사업가

100대 1 경쟁 뚫고 들어간 은행, 그땐 잘 나갔지

창선 적량마을 출신인 김임권 회장은 6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나, 바다를 보며 자랐다.

조기잡이 배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당시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창선중학교 졸업 후 동생 둘을 데리고 부산 대신동에 사는 삼촌댁으로 간 그는, 부산에 있는 경남상고를 졸업 후 당시 부산수산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바다와 금융의 자연스런 조우 때문이었는지 막연히 ‘배 사업’을 해야지 했던 유년기의 꿈은 잠시 밀어둔 채, 당시 어렵다는 은행 취직시험에 도전했다.

지금의 공무원시험만큼 높았던 경쟁률, 100대 1을 뚫고 당당히 국민은행에 합격했고 공무원 월급이 3만원이던 당시 시절 은행에 입사해 받은 첫 월급이 12만원, 꼭 3배였다고 한다.

수대 나온 은행가라 ‘괴짜’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던 그다. 그렇게 결혼도 하고 잘 나갔던 시절, 마냥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그의 삶에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늘 곁에 계셔 줄 것만 같았던 아버지의 임종이 바로 그것이었다.

교만했다, 그래서 다 날려먹었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아버지의 배 사업을 물려받고 정확히 3년 만에 선산도 팔아먹고 팔 수 있는 모든 집안 재산을 다 팔아먹고, 문자 그대로 쫄딱 망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실패의 이유, 바로 ‘교만’이었다. 김 회장은 “배 사업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데다 수대 나왔겠다, 누구보다도 바다는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난 바다에 있어서만큼은 이론과 실무가 겸비됐다고 저 깊은 곳에서는 자만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故정주영 회장이 배를 만들었던 1974년 보다 무려 6년이나 앞선 1968년에 이미 스스로 배를 설계ㆍ제작한 실력가였기 때문이다.

전 집안재산을 털어 빚 청산에 다 써버린 후, 다시 보따리 싸서 부산으로 간 그는 재기를 시도했다.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구멍가게 앞으로 당당히 지나가는 아버지의 기쁨을 알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6년간 통영 동호만 매립사업에 관여를 했다가 불의의 인명사고로 인해 또 다시 빈털터리가 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IMF경제위기에 발휘한 역발상, 믿고 저질렀다

1994년 빚을 내서 부도나기 일보직전에 이른 운반선을 사기로 판단했다.

사실 위기에 처한 맏형이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비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나는 김 회장 스스로가 고생과 시련을 터득한 역발상을 바탕으로 한 예측, 그리고 또 하나는 여섯 형제들의 끈끈한 형제애와 믿음이다.

형의 재기를 위해 가게를 팔아서 도와준 동생 덕분에 ‘모두가 말리던’ 운반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당시 김 회장은 2가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첫째,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우니 좋은 선원을 구하기 쉽겠다는 것. 둘째, 대기업의 외국 생선 수입이 어려워 생선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것.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졌고 그렇게 시작한 운반선이 지금은 대형 선망을 2척 구입해 대규모 배 사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다사업을 하는 사람치고 선망의 모든 기록을 매번 갱신하는 김임권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현재 500억대의 선주가 된 남자, 큰일을 덜컥 잘 저지르기로 유명한 그의 이런 패기는 과연 어디서 온 걸까?

도전이야말로 젊은이의 특권, 불확실성의 가능성을 믿다

그는 말한다. “남해라는 큰 섬, 이곳은 물이라는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장벽의 환경을 뛰어넘는다는 건 섬놈의 용기”이며 “멀리 더 높이 뛰어넘으려 시도할수록 더욱 큰 성취가 다른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젊은이들에게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목숨을 걸고 도전할 수 있는 일, 올인 할 수 있는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젊은이의 특권인 도전을 두려워말고 불확실성의 가능성을 믿고, 스타덤에 올라설 수 있는 그 가능성에 열정과 노력을 걸어보라는 것이다.

그는 단언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정된 것은 없으며 10년 뒤, 30년 뒤를 예측할 수 있는 삶처럼 재미없는 삶은 없다고. 또한 감히 추천한다. 그저 안정감을 쫓기 위해 어떤 일을 구하려 하는 자가 있다면, 차라리 배를 타보라고.

그렇다면 만년청년 같은 신사, 그는 지금 무엇을 꿈꿀까?

“바다 없이는 살 수 없기에 남해에서 배 사업을 한다면 어떨까 종종 구상해본다”며 “수산업발전이나 고향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열정과 헌신을 다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역시 젊음은 숫자의 대소가 아니다. 젊음은 매일의 두려움에 맞서서 도전하고, 새롭게 노력하는 자의 권한이다. 김임권이라는 만년청년이 걸어온 발걸음으로 전해 준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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