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맞이 며느리 역할 … 이건 제가 할게요,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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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맞이 며느리 역할 … 이건 제가 할게요, 느낌 아니까~”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3.09.12 15:55
  • 호수 3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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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두렵지 않은 남해주부들의 수다

명절증후군을 전혀 이해 못하는 3050주부들의 납득 되는 수다가 펼쳐진다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날, 다른 한편으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날이 바로 추석 명절이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해  차례를 지내는 음력 팔월 보름날’이라는 추석의 뜻만 본다면 두 팔 벌려 껴안아 맞이해도 모자람이 있을 법도 한데 언제부터 추석은 피하고 싶은 날, 부담스런 날이 된 걸까?

추석이라고 치는 순간 머릿속에는 굴비처럼 줄줄이 따라 나오는 ‘추석 때 듣기 싫은 말 1위, 대체 뭐길래?’, ‘추석 물가 비싸’, ‘환영 못 받는 추석선물은?’ 등등 현실적인 단어들.

이런 단어들의 조합이 빚어낸 ‘명절증후군’까지. 이를 진단해보기 위해 만났다. 명절증후군을 모르겠다는 이들 ‘3050 남해 주부’들과 명절을 주제로 들으면 들을수록 납득이 가는 수다를 나눈 주부들을 소개한다.

▲ 7년차 누엔티투스엉(30)

# 7년차 누엔티투스엉(30)
베트남에서 시집 온 그녀는 현재 선소마을에서 남편과 어업에 종사하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딸만 둘인 그녀는 요즘 네살배기 큰딸이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애교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 12년차 박정란(37)
읍 아산마을에 사는 그녀의 시가는 읍 북변리에 있다. 고현면 남치가 친정인 그녀는 스물여섯에 결혼해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다.

# 24년차 박성룡(50)
경기도 하남시에서 이동 다정마을로 시집 왔다. 7남매의 막내며느리로 살면서 시부모님을 15년간 모셨으나 현재는 시집, 친정 양친 부모 모두 돌아가셨다. 딸 둘 아들 하나있다.

# 25년차 서재심(50)
설천 동흥마을에서 막내딸로 자랐다. 강원도 영월의 남자를 만나 결혼 딸 둘 아들 하나를 뒀다. 현재 시가가 서울이라 명절마다 남해에서 서울로 대이동을 하고 있다.

# 27년차 배미숙(51)
시가와 친정이 앞집과 뒷집에 나란히 있다. 삼동면 물건리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결혼할 즈음 ‘엄마’와 가까이 살고 싶어서 동네 오빠와 결혼을 결심, 현재 아들 둘을 뒀다.

추석이 반가운 南海주부, 귀 기울여보니 …

30대 주부 둘과 50대 주부 셋이 모여 각자의 ‘추석’을 이야기 한다. 당초 명절증후군에 대한 격한 공감을 바탕으로 비판적인 수다를 기대했는데 이건 웬걸 대화를 하면 할수록 주제는 ‘명절증후군이요? 그게 뭐죠?’로 바뀌었다.

박정란 = 시댁이 5분 거리다 보니까 뉴스에서 나오는 차가 밀리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다. 시댁이 먼 사람들이 부럽다. 추석선물사서 막히는 저 도로를 뚫고 시댁을 향해 가는 그런 힘겨운 사투 같은 걸 한번은 겪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과자를 사다가도 어머니 생각이 나면 바로 사서 갖다드릴 수 있고, 늘 수박을 사면 잘라서 반통을 주시는 어머니덕분에 친정엄마의 정을 더욱 자주 느낄 수 있으니 가까이 사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서재심 = 난 시댁이 서울이라서 여행하는 기분으로 간다. 사실 난 친정에서도 막내딸이지, 시댁에서도 막내며느리다 보니 명절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 특히 음식을 워낙 못하니까 손을 대려 해도 형님들이 못하게 해서 주로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 하하

배미숙 = 난 막내며느리지만 내가 대장이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제사음식이든 명절음식이든 내가 다 도맡아했다. 내가 내 맘대로 준비하니깐 좋더라. 형님들 오시면 알아서 명절 음식 싸가라고 하고 늘 생선과 멸치를 한가득 쌓아놓고 드린다.

누엔티투스엉 = 한국추석, 베트남과 비슷하다. 베트남에서도 음식 많이 해서 나눠먹고 했다.
여기 와서 남편이랑 배 타고 나가서 꽃게랑 새우, 쭈꾸미를 잡는데 재밌다.
추석 되면 식구들도 많아지고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다.

박성룡 = 30~40명이 모이니까 명절 한달전부터 이불빨래만 했다. 명절 보내고 나면 또 한달 동안 이불빨래만 한다. 밥그릇 국그릇 500개를 계산해서 준비해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립다. 전 부치는 형님, 생선 굽는 형님 다 역할분담해서 했다. 시숙 중에서 애처가 한분이 계신데 그 분은 꼭 추석차례 지내고 나면 큰 대야를 가져와서 본인이 나물과 밥 다 넣고 참기름이 많아야 맛있다며 반병을 붓고 비벼주셨다.

서재심 = 그런데 다른 집 얘기 들어보면 명절은 답이 없는 것 같더라. 동서는 동서대로, 형님은 또 형님대로 불만이 많더라. 형님이 제사비용이랑 가사노동 때문에 슬그머니 불만을 얘기하면 동서는 동서대로 ‘아이고 형님 고생많으시다’ 그러면 끝 날 일을 뒤에서 다른 동서 붙들고 여기까지 오는 기름값이 어떻고 운전피로가 어떻고 하니 합이 안 맞는 것 같다.

박정란 = 그런데 가족들 만나러 가는 건데 차비 쓰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배미숙 = 맨날 불평불만만 하면 결국 자기 삶만 피폐 해지는 건데 6개월에 한번 오는 명절, 가족끼리 오랜만에 얼굴보고 밥 먹는다고 좋게, 좋게 생각하면 될 것을.

누엔티투스엉 = 난 우리 시누이가 참 좋다. 고모가 오면 우리 딸들을 너무 좋아한다. 추석이 있으면 그래서 더 좋다. 식구들이 많이 와서 다들 예쁘다 해주고 도와주니까 좋다.

박성룡 = 조카들이 고등학생 되면 더 보기 힘들어진다. 어른들만 모이고 애들은 오질 않아. 왜 그런가 보니 ‘성적은 어떻고 어떤 대학을 갈거냐’ 이런 소리 듣기 싫어서더라고. 아무리 가족이고 친척이래도 일단은 ‘소통’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지 싶다. 내가 시집와서 첫 명절 지낼 때 생선 찌는 냄새를 도저히 못 맡겠어서 대문밖에 나가 혼자 쭈그리고 앉았을 때 우리 시아버지가 오셔서 ‘아가 왜 그러누’하셨다. 그때 겨우 설명을 하다가 죄송스런 맘에 눈물을 보였는데 우리 시아버지가 그 다음 명절에는 막내며느리인 나를 위해 다른 곳에 생선을 쪄달라고 아예 일을 맡기셨더라고. 얼마나 고마웠던지. 형님들은 막내며느리 덕분에 호강한다고 좋아하셨다.

서재심 = 추석만 되면 물가 얘기, 선물 얘기 등으로 돈, 돈, 돈 하는데 추석경비라 생각 말고 ‘여행경비’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3박4일 떠나는 장거리 여행. 진짜 상식 중의 상식인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나. 형제간이 만나는 축제의 날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스마트시대다 뭐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인간은 정을 나눌 때 비로소 인간적이니까.

명절이 있어, 참 다행이다

배미숙 = 그나마 추석 때라도 만나야지, 몇 년 안보면 길에서 싸우고 있어도 쟤가 사촌인지, 조카인지 분간도 못한다. 다행히 명절이 있으니까 형제도 만나는 거지. 없다고 생각해보라. 사회는 점점 빠르고 복잡해지지 않나. 한 걸음 쉬어가는 날이 명절이라고 생각한다.

박정란 = 어렵게 생각 말고 그냥 솔직하게 표현하면 되는 건데 그게 잘 안 되다보니 조금씩 틈이 생기고 거기에 시간이 더해지니 괜히 힘들고 멀어지는 것 같다. 이번 추석은 조금 더 긍정적으로, 조금 더 솔직하게 다가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누엔티투스엉 = 입덧이 너무 심해서 1년 가까이 한국음식을 아예 못 먹고 고생했다. 그때 시아버지가 베트남 음식도 구해주시고 엄청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그 음식도 못 먹고 결국 병원에 가서 링겔 맞고 난리였다. 항상 고맙다. 추석은 그렇게 고마운 우리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 먹고 오래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은 날이다.

박성룡 = 시부모님 모시면서 명절 치를 때는 힘들다 생각했던 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때가 참 좋았다는 것. 또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공짜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쓰고 정성 쓰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그리운 추억의 시간’으로 남는 것 아닐까. 가고 오는 데 있어 약간의 삐걱거림이 있으니 무슨무슨 증후군이 생기는 것뿐이지, 고치지 못할 큰병은 아니라고 본다. 마이너스 플러스 너무 계산 말고 먼저 반겨주는 게 치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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