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연대는 사고팔기가 아닌 `주고받기`경제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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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연대는 사고팔기가 아닌 `주고받기`경제에서 시작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3.11.21 10:30
  • 호수 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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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내의 레츠(1)-사람을 향한다 `한밭레츠`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조그만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어둠을 탓하고 있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피터 노스, 레츠 작가 겸 연구원
 



 인류의 긴 이력 속에서 돈은 본래 등가의 물건과 맞바꾸는 교환수단일 뿐이었으나, 오늘날은 돈이 그 자체로 상품이 되어 매매되고 자기 증식을 반복하는 병에 걸려 있다.

▲ 대전 한밭레츠 사무실에서 판매하는 매실효소는 현금 1만원과 2천 두루를 내면 살 수 있다. 이웃의 민들레의료생협한의원에서도 보약을 한 첩 짓고 10만 원 중 7만원은 신용카드로, 나머지 3만원은 현금대신 `3만 두루`로 지불할 수 있다. `골고루`라는 순우리말에서 비롯된 `두루`는 대전에서만 유통되는 무형의 화폐다.
 미하엘 엔데의 판타지 소설 <모모>에서 사람들이 바빠지기 시작한 건 시간 저축은행 소속의 `회색 신사들`이 나타나 시간을 절약하는 법을 일러주면서다. 시간은 돈이 되고, 사람들은 점점 시간이 없어지는데 회색 신사들은 그렇게 뺏은 시간을 향유하는 `이자 생활자`가 된다.

 미하엘 엔데가 모모를 통해 꿈꾸었던 것은 저축할 수 없는 화폐다. 본래 기능을 회복한 돈이다. 이러한 꿈이 꿈에 그치지 않도록 생활로 실천해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한밭레츠`의 회원 600여명이다. `두루두루 널리 쓰인다`는 뜻에서 `두루`라는 이름의 공동체 화폐(무형화폐, 거래상의 화폐)를 사용하는 한밭레츠.

 이러한 공동체 화폐는 혼자서는 쓸 수 없는 구조 위에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기본이다. 김성훈 대외협력실장은 말한다. "전국 30여 곳의 지역 레츠(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중 2000년에 창립행사를 가진 한밭레츠가 지금까지 활발히 유지해오니까 여기저기서 성공비결을 알려달라고 오시는데 엄밀히 말해 성공사례라기보다는 망하지 않은 사례일 뿐"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레츠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경제운동의 하나이자 지역공동체 복원이라는 두 가지 큰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런데 두 문제는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사고파는 경제가 아닌 주고받는 경제로 되돌려 놓는 과정을 연습하는 일"이라고 한다.
 지난 1997년 있었던 IMF 외환위기 이후로 현재의 화폐제도에 대한 반성이 한국에서도 일기 시작했으며 외국의 경우 또한 세계금융위기가 레츠 운동의 도화선이 되어 온 건 사실이다.

한사람의 `나눔`이 또 다른 `연대`를 낳고

 김성훈 실장<사진>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심각한 `무기력증`을 겪게 됐다. 그러한 통증 후 사람들은 사람을, 나아가 공동체를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레츠가 먼저가 아니라 공동체가 먼저다. 공동체 관계가 있지 않으면 레츠가 성립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회적기업도 마찬가지 아닌가. 사회가 건강해야 사회적 기업도 성공하는 거지 건강하지 못한 토대위에서 잘못 운영하면 무늬만 사회적 기업일 뿐 결국 시장경제에 편입될 뿐"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624가구가 참여해 2012년에만 약1만6천 건의 거래가 있었으며, 거래 액수만도 3억 4천6백 두루에 해당하는 한밭레츠, 이곳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의료생협`이 있다는 것이다.

 김성훈 실장에 따르면, 99년 한명의 한의사의 가입이 의료생협의 출발이었다. 그 한의사는 한국 사회에서 한의사는 혜택을 많이 보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판단,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의료봉사를 종종 나가는데 다녀오면 마음이 더 이상하고 불편했단다. 그러던 차에 그 한의사는 신문기사로 한밭레츠를 접하고,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가 아니어서 본인 마음도 편안해지고, 한의사로써 지역에 기여할 수 있어 좋았다`며 가입을 했다고.

 한의사가 가입하자 레츠 회원들에게는 든든한 주치의 하나가 생긴 셈이다.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의 건강 상담도 하고, 자신의 아픈 곳도 진료 받을 수 있는 친구의 병원이 된 것이다. 게다가 20만원가량의 한약을 두루를 사용해 지을 수도 있어 최대 반값에 먹을 수 있게 되자 레츠 회원들은 좋은 사람도 만나면서 경제적인 혜택도 받을 수 있는 레츠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요한 것`과 `줄 수 있는 것`을 주제로 대화하라
 100%중 최소 30%이상은 현금이 아닌 두루로 교환이 가능한 세계, 바로 한밭레츠의 세계다.

 그렇다면 이러한 레츠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레츠의 시작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존의 `돈·돈·돈`에 대한 강박증을 살짝 잊은 채 각자의 도시락 등을 싸들고 와서 우선은 빙 둘러 앉는다. 그리고 도시락을 서로 나눠먹으며 각 쪽지 두 개를 나눠 갖는다. 사람들에게 종이 하나에는 필요한 것 다섯 가지 쓰게 하고, 다른 종이 하나에는 본인이 나눠 줄 수 있는 것이나 할 수 있는 일 다섯 가지를 쓰게 한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거다. 김성훈 실장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나이 들수록 속 얘기 잘 안하지 않나? 그런데 신기하게 이 워크숍을 해보면 `생활`이야기 하면서 자연스레 자기가 처한 문제나 고민부터 성격까지 슬슬 나온다"고 한다.

 누가 우리 아이 수학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다른 요리는 못하지만 김치찌개는 잘한다 등등.

 이러한 더하기 빼기 놀이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면서 필요한 것을 `오직 100% 돈`이 아닌 `대화`와 `두루`를 섞어 주고 받다보면 어느새 잃어버렸던 이웃 간의 정과 신뢰가 회복되는 교환시스템, 이것이 바로 레츠다.

 ※이 기사는 사회투자지원재단의 자문도움을 받았으며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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