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가을 색이 서울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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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가을 색이 서울보다 좋다
  • 장현재
  • 승인 2013.11.21 10:34
  • 호수 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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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현재
본지 칼럼니스트
상주초 교사
 봄이 파스텔톤의 연분홍으로 아래에서 위로 번져간다면 가을은 소슬함과 깔끔함을 더한 다홍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물들어 온다. 남해의 가을! 옥색으로 물든 하늘을 닮은 바다와 야트막한 산과 언덕을 물들이는 단풍의 합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을날 바래길을 걸어본 사람은 도심 속 고궁의 가을보다 청순함과 자연미를 담고 있는 남해의 가을 색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속해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하여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자신이 속한 환경이 얼마나 좋은가를 다시 알게 된다.

 서울! 그곳은 인구 천만이 넘는 우리나라 제일의 도시이다. 잠시 일이 있어 찾았다가도 빼곡한 고층건물과 차량 행렬 그리고 무수한 인파와 숨이 막힐 듯한 공기로 인해 누가 붙잡지도 않았는데 종종걸음으로 도망쳐 나오기가 일수였다. 이런 서울에 싫든 좋든 이틀 동안 포로가 되었다. 그것은 전교생 서른 명 남짓한 시골아이들과 함께한 한려해상 퓨전 서울탐방 국립공원 생태나누리 행사였다. 서울방문에 아이들은 잔뜩 기대에 차 있지만 왠지 출발하기 전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남해의 바다를 뒤로 북으로 향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속도로변의 가을은 타다가 시들어 떨어지고 있다. 수많은 차량의 행렬 속에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멈칫거림에 서울의 중심에 들어선 것을 느낀다. 서울의 풍경은 눈을 혼란스럽게 한다. 낮은 땅 위는 포화상태가 되어 건물의 스카이라인은 하늘로 치솟고 차들은 꼬리를 물면서 지상과 지하를 넘나든다. 이런 도심 속에 일상을 살아야 하는 도시민들은 항상 자연을 그리워하며 탈출을 꿈꾸고 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다리와 그 위를 적혈구처럼 사람과 물건과 태우고 실은 차량의 규칙적인 바쁜 움직임들이 한적한 남해를 생각하게 한다. 꼬리에 꼬리를 따르는 도로 위의 시간은 지치게 한다. 여유와 한가함 속에서 살든 촌 사람의 인내심은 도시인을 따라 잡기는 불가항력인가 본다. 아이들과 함께 롯데월드로 간다. 밖의 놀이동산은 그래도 괜찮지만, 실내에서 두어 시간 지내자 배도 머리도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군집 독이 가져온 증상으로 청정한 자연환경에서 자란 남해 아이들의 몸짓이다.

 이튿날이 됐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부용지가 있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창덕궁의 가을을 찾는다. 창덕궁은 조선의 기틀을 굳건히 세운 태종 5년에 지어져 정궁으로 왕이 제일 오래 머무른 궁이며 또한 조선말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린 일제 침략의 비운이 서린 곳이다. 하지만 이런 아픔을 알고 있는지 관광객 속에 섞여 나와 독침처럼 스쳐 가는 중국말과 일본말을 들으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아픔을 간직한 창덕궁의 가을! 돈화문 안의 회화나무는 늙어서 노래지고 화려함에 취한 단풍나무는 진함 슬픔으로 물들어 있다.

 서울의 가을은 바다와 함께하는 남해의 가을과는 확연히 다르다. 서울의 가을 색은 가로수와 고궁 그리고 남산으로 대표되지만, 건물과 차량, 사람 속에 포위되어 항복했다는 표현이 걸맞을 것이다. 답답한 고층건물 사이 숨죽인 가을, 인사동의 무수한 인파를 뒤로하며 남산 케이블카를 탄다.

 내가 서울에서 제일 처음 케이블카를 본 기억은 여섯 살 때의 창경원이었다. 지금은 창경궁으로  복원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혼을 없애겠다고 궁궐을 훼손하여 연못을 만들고 벚나무를 심고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사용되어졌으며 비원과 함께 아픔을 간직한 곳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시내와 남산의 가을 색은 대조를 이룬다. 궤짝 같은 케이블카에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이 다양한 고린내를 풍기며 남산의 가을 색을 칭찬한다. 한 대가 도착하여 무수한 사람을 쏟아놓고 다음 차례를 태우고 올라가기와 내려옴을 반복한다.

 울긋불긋한 남산의 가을은 생뚱함과 더불어 자유로움도 묻어난다. 단풍 그늘 속에 사랑의 약속을 채운 열쇠 울타리가 지금을 말하고 있다. 스스럼없이 입을 맞추는 젊은이들. 남산의 가을은 자유와 낭만을 담으며 늦가을을 달구고 있다.

 빼곡한 일정 때문일까 모두 지친 모습이 묻어난다. 떨어지는 가을비와 칙칙한 도심의 가을을 어둠 속에 묻으며 다시 남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밤을 지나 새벽을 맞는다. 밤새 도심의 가을 색이 회색빛으로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스며들어오는 악몽을 꾸었다. 밝아오는 동쪽과 모습을 드러내는 망운산의 깔끔함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 어떤 화장기도 없는 촌색시 같은 자태로 보듬어 주는 남해의 바다와 가을 색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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