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바다 남해연안의 멸치를 국민의 식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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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바다 남해연안의 멸치를 국민의 식탁에!
  • 김광석
  • 승인 2013.11.28 10:39
  • 호수 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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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비결은 3대째 이어오는 깊고 진한 손맛 제2공장 지어 생산량 늘어도 수요 맞추기 버거워

(7)멸치액젓의 명가 수정식품
우리군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역 내 농수임축산물의 부가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가슴은 뜨거워야 한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땀방울, 그들의 숨소리와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 남해시대신문이 그 현장으로 달려간다.<편집자 주>


 김장철이 다가왔다. 김장철에는 우리 남해의 멸치액젓이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시기다. 멸치액젓하면 우리 남해를 빼놓을 수 없다. 남해가 멸치의 본고장이듯 멸치액젓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남해의 동부연안 마을들에선 대부분 멸치액젓이 생산된다. 물건, 은점 마을공동기업을 합쳐 전문적으로 멸치액젓을 생산하는 업체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개별가정에서 소소하게 액젓을 담그는 경우까지 합치면 우리 남해의 가장 큰 특산품이 바로 멸치액젓이라고 할 것이다.

 어디나 원조가 있듯 액젓생산업체 중에서도 원조가 있다. 바로 물건마을 숲 뒤에 자리를 잡고 있는 수정식품이다. 수정식품의 브랜드 인지도는 국내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어딜 가더라도 남해를 대표하는 멸치액젓 전문 브랜드다. 그것도 오래된 일이다. 생산량도 어마어마하다. 일 년 내내 멸치를 담그고 365일 택배물량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팔려나간다. 수정식품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역사를 써올 수 있었을까?  
 
수정식품의 역사는
 
 바닷가인 삼동면 물건마을, 물건방조어부림으로 유명한 거대한 물건 숲 뒤쪽에 지독하게 가난했던 집이 있었다. 가장인 한 씨는 빚만 잔뜩 남긴 채 일찍 세상을 떠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중학생인 큰딸아이 아래로 올망졸망한 아이들만 남은 그런 집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을 빌려줬던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온갖 욕지거리를 쏟아 놓고 가면 온 가족들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집이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빚 구덩이로부터 헤어나기 위해 무슨 일이든 찾아 나서서 해야 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 가장인 시어머니는 늦가을 제철이면 발에 밟힐 정도로 흔하디흔하게 널린 큰 멸치를 모아 젓갈로 담아보기 시작한다. 아무리 큰 사업도 원초적인 작은 원리로부터 시작되듯 남해의 멸치액젓도 바로 여기로부터  특산품 산업으로 발전하는 상품화의 길이 열리게 된다.
 
3대째 이어오는 손맛
 
▲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수정식품 한정녀 대표가 택배물량을 포장하고 있다.
 수정식품의 1대 창업주인 천봉아 시어머니는 남다른 음식솜씨를 타고난 분이었다. 똑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맛은 다른, 남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그런 손맛을 자랑했다. 멸치액젓은 오로지 소금만으로 멸치를 절여내는 천연의 발효식품이다. 멸치원료와 소금 양의 조절만으로 맛이 결정된다. 나머지는 오직 시간과의 싸움이다.

 1대 시어머니 천봉아 여사의 타고난 감각이 남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최상의 젓갈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자연히 수정식품의 멸치액젓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돈을 주고 액젓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찾아진 것이다. 빚을 다 갚아내려면 더 많은 액젓을 담가 돈을 만들어야 했다. 해가 갈수록 젓갈독이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고 그 양만큼 수입도 늘어 빚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였던 것이다.  

 천봉아 시어머니의 손맛은 그대로 며느리 오희덕 여사에게 전수된다. 중학생이었던 딸 한정녀 씨도 성장해 어머니를 도울 수 있게 되자 이제 본격적인 멸치액젓 생산 식품업체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하여 남해멸치액젓 상품화 1호인 수정식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특산물 바자회를 기회로
 
 수정식품이 전국의 대표 브랜드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을 닦은 주인공은 3대째 가업을 이은 딸 한정녀 씨다. 현재 남해군새마을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한 씨는 타고한 묵묵함과 왕성한 활동력으로 수정식품을 키워왔다. 특히 수정식품의 브랜드 파워를 키워 준 것은 서울과 부산 대도시의 구청단위에서 개최하는 특산품바자회였다. 초기 한 씨는 기를 쓰고 이런 바자회장에 멸치액젓을 들고 참가했다. 서울 동대문구와 부산시청 앞 광장은 한 해도 빼놓지 참가했다. 여기서 수정식품의 젓갈 맛을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때마침 택배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의 주문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우체국 특산물 쇼핑몰 상품으로 등록된 것은 물론 신협이 전국의 지점망에 공급하는 상품으로 선택됐다. 또한 웬만한 새마을금고 창구에도 수정식품의 상품이 진열돼 있다.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수정식품에 대해 우리나라 유명한 한식요리연구가들의 관심 또한 비켜갈 리가 없다. 신라호텔, 프라자호텔의 주방장을 비롯한 한식요리연구가들 모임은 나들이 겸해서 해마다 버스를 타고 수정식품을 찾아와 익어가는 젓갈을 직접 맛보고 간다. 한식업계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 이들이 서울의 유명한 한정식집이나 인천의 유명김치제조회사와 연결을 시켜줘서 수정식품의 멸치액젓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추석이나 설에는 선물을 위한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군내 전 택배회사가 다 동원될 정도다. 한 전직 대통령 부인도 수정식품의 멸치와 멸치액젓을 선물용으로 해마다 주문하고 있다. 강원도까지 가는 물량도 많다. 
 
제2공장 가동으로 새로운 도약
 
 이렇게 시장의 수요가 늘어나자 수정식품은 더 큰 액젓 생산 공장이 필요했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이 뒤따라 수정식품은 땅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마침내 삼동면 동천리에 제2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제2공장을 가동하고 나서도 공급물량을 다 맞춰내기가 버거울 정도다.

 수정식품의 이런 인기 비결은 뭘까? 수정식품은 상품 포장지에 오직 생멸치 75%와 식염 25%만으로 12개월 이상 숙성시킨다고 제조법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맛이 차이가 나는 것은 아무래도 3대째 이어오는 손맛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정녀 씨는 "원료가 최상의 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주성분인 소금만큼은 전남 해남염전에 직접 가 골라 와서 12개월 이상 간수를 뺀 다음 순도 100%의 식염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 항온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온도를 18도에서 20도로 맞추기 위해  지하 3m 지상 1m 규모의 액젓 절임용 숙성 탱크를 전통항아리 제조기법으로 만든 자기질 타일로 만든 것 말고는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말한다.

 어쨌든 수정식품의 멸치액젓은 깊고 진한 맛이 난다는 정평을 듣고 있고 소비자들로부터 받는 사랑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멸치액젓만큼 음식의 깊은 맛을 살려주는 천연발효조미료로도 없다. 국민의 밥상에 오르는 천연발효조미료로서 우리 남해에서 생산되는 멸치액젓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수정식품이 그 명성을 죽이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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