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새내기 공무원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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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새내기 공무원의 다짐
  • 남해타임즈
  • 승인 2014.02.13 14:32
  • 호수 3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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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민 욱
환경수도과 녹색성장팀
 나는 나이가 올해로 40, 즉 불혹이 돼 공직에 입문했다. 근무지는 남해군, 직급은 지방행정서기보다.

 이런 나에 대해 어떤 분은 "적지 않은 나이에 공직생활을 시작한다니 힘들겠구나"라고, 다른 분은 "많은 나이에 공부해서 그 어렵다는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하다니 대단하네"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나는 사실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작년 1월까지는. 나는 서울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학원강사였다.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가르치는 강사는 아니었고 철학을 가르치는 강사였다. `사주팔자나 점보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나`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런 선생은 아니고, 쉽게 말씀드리면 공자왈, 맹자왈 하고,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배우는 것이 철학이고, 그들이 고민한 문제를 가지고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이 내 직업이었다. 꽤 유명해져서 강남으로, 강북으로 바삐 움직였다. 아침 10시부터 밤 10까지 점심시간 30분 빼고 내리 수업을 하며 바쁘게 살았고, 수입도 넉넉해 부러울 것이 없었다. 또한 아내는 지방 공무원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다. 단 하나 주말부부였다는 점만 빼고. 하지만 불행은 잠자는 동안 도둑고양이처럼 찾아왔다.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온 아내가 오른쪽 가슴 밑부분에서 뭔가가 만져진다고 내게 말했다. 그래서 한번 만져보니 작은 구슬같은 뭔가가 만져졌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뭔가 안 좋은 거구나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래서 그 날 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물혹이라고 했다. 많은 여성들이 가지고 있다며, 혹시 모르니 조직검사는 해보자고 해서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 2주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회사에서 동료 강사들과 회의 중이었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수신거절을 했는데 계속해서 전화가 오길래 받았더니 좀 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면서 울먹였다.

 무슨 정신으로 아내가 있는 곳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급하게 서울 삼성병원에 수술날짜를 잡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천만다행으로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 암세포가 아주 유순한 성격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가슴 한쪽을 다 들어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수술 후, 난 아내에게 공직생활을 그만 둘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내는 "지금이야 당신 월급이 나보다 훨씬 많지만, 강사라는 직업이 40, 50에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 내가 그만두면 대안이 없잖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럼 내가 공무원이 되면 그만 둘 수 있느냐고 말하자 그렇다면 그만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길로 고시원으로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기도했다. 제발 붙여주시라고, 그래서 꼭 아내를 그만둘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7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필기시험 합격소식을 듣게 됐다. 최종합격한 날 아내에게 이제 내가 출근하면 그만 둘거지? 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가 돌변했다. "생각해 본다고 했지 그만둔다고 하진 않았어"라고. 아내는 더 이상 주말부부생활을 안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최종합격 후 난 고민에 빠졌다. 공직생활을 함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때 떠올랐던 것이 예전에 학생들과 토론했던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무분별심이었다. 무분별심의 반대는 분별심인데 이는 불교에서 경계하는 대표적인 마음이다.

 분별심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유명한 원효의 해골바가지 일화를 떠올리면 된다. 목이 말라서 먹었을 땐 세상 그 무엇보다 맛있었던 물이 아침에 해골바가지 속의 썩은 물임을 알게 되고선 먹은 것을 모두 토하게 된다. 물은 밤에도 낮에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원효의 마음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분별심인데 이 분별심을 가지면 차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차별하는 마음을 가지면 욕심과 집착이 생긴다고 한다.

 내가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한 분별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나이에 대한 분별심을 버리자는 것이었다. 신입치곤 많은 나이에 나이 대우를 기대해서 서 푼어치도 안 되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빠르게 조직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학원강사는 대부분 세법상 개인 사업자이다. 쉽게 말해서 다들 사장님인 셈. 그래서 나이가 적든, 많든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공직생활은 수직관계의 조직생활이기에 수평적인 관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행여 그전의 생활문화에 젖어서 적응하지 못할까 염려됐다.

 둘째는 민원인에 대한 분별심을 가져서 차별하거나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의 주 고객은 학생들이었다. 존중의 대상이기 보다는 가르침의 대상이었다. 행여 내가 민원인을 비롯한 군민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까 걱정됐다.

 민원인을 무분별심으로 대하면, 공정한 행정을 펼 수 있을 것이고, 모두가 대등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불교식으로는 자비의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참고로 나의 종교는 불교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서두에 말한 불혹과 무분별심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직이지만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곧고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고 동료와 민원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좋은 공무원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남해군이라는 공간, 새내기 공무원이라는 여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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