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별리고(愛別離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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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별리고(愛別離苦)
  • 남해타임즈
  • 승인 2014.03.06 13:22
  • 호수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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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숙
창선면 독자
 삼일절 아침. 먼 길 떠나는 아들을 환송하듯 도로 양 옆으로 세워 놓은 태극기는 펄럭펄럭 나부끼고, 하늘은 울먹울먹 울음을 터뜨렸다. 겨울 방학 두 달을 푹 퍼져 지내던 아들이 어제 서울로 올라갔다.

 버스터미널에서 돌아오니 집 마당의 매화나무가 부슬비에 젖은 채 하얗게 웃고 있다. 사람 떠난 빈자리를 채우려고 깐에는 용을 썼던지 꽃망울을 죄다 벌려 놓았다. 소란스럽지도 유난스럽지도 않은 아들놈 성품이 매화꽃 암향暗香을 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매불망 내가 그리워하던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나무를 앞에 두고도 별 감흥이 일지 않는다. 갑작스레 모든 신체 감각과 두뇌 기능이 정지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제 봄도 되었으니 겨우내 메말랐던 들판에 들불 번지듯 내 가슴에도 생명의 열기가 타올라야 하건만. 그런 건 없고 공허함이 뼈에 사무친다.

 이 아이를 이렇게나 사랑했었나. 내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울음 울만큼 이토록 사랑했었나. 참척(부모 앞서 자손이 세상 떠나는 것)의 쓰라림이 이러할까. 천 리 밖으로 아이를 보낸 죄로, 어미는 천 일 가지고도 사그라뜨리지 못할 호된 그리움을 홀로 앓아야만 하는가. 아이를 더 멀리로 떠나보낼 때마다, 남겨진 어미는 작은 바람에도 살갗이 에이는 듯 아프고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야만 하는가. 치매에 걸리면 이 아픔이 잊히려나.

 아들은 많은 시간 부모를 잊은 채 살아가겠지만 나에게는 아이로 인한 공백이 우주 공간만큼이나 휑하다. 나를 어미답게 하는 마지막 보루이며 어미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아이의 부재가 분명한 지금 빈 방을 확인하는 것이 두렵고 허전하다. 미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도 모든 중생이 겪어내야 할 슬픈 운명이련마는.

 기숙 고등학교 삼 년 동안 숱하게 만나고 헤어지며 이별 연습을 했음에도 이별은 여전히 낯설다. 그러니 `당신네만 겪는 일이 아니다`라는 세상의 섣부른 위로가 가슴에 크게 와 닿을 리 없다. 물론 나 역시 이 모든 쓸쓸함에 대해 조금씩 익숙해져 갈 것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리 살아야 하는 자연의 순리가 오늘따라 가슴 시리다.

 작은 새장에 더 이상 가둘 수 없이 커 버린 아이를 이제는 훠이훠이 날려 보내려고 한다. 다만 이 말만은 꼭 들려주고 싶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너를 향한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라고. 진정 내 목숨처럼 너를 사랑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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