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래한 수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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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래한 수능의 추억
  • 남해타임즈
  • 승인 2014.11.11 12:44
  • 호수 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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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면 독자
 60여 만 수험생들의 절박한 심정도 아랑곳없이, 무심한 수능 시계는 지금 이 순간도 재깍재깍 흘러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 시즌이 돌아왔다.

 매년 이맘때면 나도 모르게 수능 분위기에 젖어든다. 재직 동안 주로 고3 담임을 맡았던 남편은 수능 사나흘 전이면 으레 합격기원 찹쌀떡을 들고 왔다. 떡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수험생들이 느낄 초조함이 고스란히 전염되었다. 아들이 `수능 대첩`의 당사자였던 2013학년도 수능이야 말해 뭣하랴.

 험난한 수험생의 길이 예고된 3월 신학기 첫날부터 수험생과 학부모의 24시는 수능 모드로 전환된다.
시험 스트레스로 늘 말초 신경을 곤두세우는 수험생과 그런 자녀 앞에서 숨도 크게 못 쉬는 학부모에게 고3 일 년은 지옥이 따로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우리 집 수험생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한 데다 `고3병`이 알아서 피해 갈만큼 천하태평인지라, 말하자면 우리는 `나이롱 수험생과 학부모`였다. 머지않아 전국의 성당과 사찰과 교회가 백일치성을 올리는 학부모들로 들썩댈 거라는 뉴스가 흘러나올 때도 꿋꿋했으니까. 그런데 `D-100일`이 주저앉기 시작하자 내 안에도 스멀스멀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마침내 2012년 11월 8일, 수능고사 격전의 날이 밝았다. 고사장 주변 풍경은 예년 그대로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고사장 정문마다 후배들이 떼로 몰려와 열띤 응원전을 펼쳤고, 오전 8시 10분 입실이 완료된 뒤로도 자녀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애끓는 모정이 넘쳐났다.

 관공서와 기업체는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추었고,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은 러시아워 운행시간을 2시간 연장하였으며, 언어와 외국어영역의 듣기 평가 시간에는 항공기 이착륙이 통제되는 등 그야말로 온 나라 안이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이런 와중에 늦잠꾸러기 강심장들도 여전하여, 경찰 순찰차에 오토바이에 소방차까지 동원되어 지각수험생들을 실어 날랐다. 고사장을 착각하여 동명이교로 달려가고(서울과 구리시의 인창고), 폐암 말기에도 투혼을 발휘하고, 경찰관의 예물시계를 빌려 시험을 치르는 등 에피소드도 만발했다.

 `수능 대첩`에 출사표를 던진 수험생 중 실제 응시자는 총 62만 1336명에 재학생이 76.7%였다. 시험은 전국 85개 시험지구 1천191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언어영역이 시작된 오전 8시 30분부터 수리, 외국어, 탐구영역을 거쳐 제2외국어(한문)영역으로 마무리된 오후 5시 30분까지 긴장감이 이어졌다.

 수험생끼리의 경쟁이라기보다 어쩌면 자신과의 치열한 한 판 승부였을, `수능 대첩`은 그렇게 모두 끝이 났다. 고사장을 후끈 달구었던 열기와 초중고 12년간  오로지 수능이라는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내달렸던 열정도 함께 증발했다. 그리고는 마치도 연극이 끝나고 난 뒤처럼 밀려드는 허탈감과 적막감에 가슴들이 알싸했을까.

 하지만 수능 시험, 그것으로 다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일 뿐이다. 지긋지긋한 수능 참고서와 교과서의 화형식에 앞서 처리해야 할 일도 산더미다. 우선 당장 한 달 넘게 남은 겨울방학식날까지 수업도 자습도 없는 썰렁한 교실에서, 전역날짜를 받아 놓은 말년 병장의 권태로움 같은 것을 견뎌야 한다. 대학 정시모집 일정에 맞춰 원서를 제출하고 또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피 마르는 시간도 오롯이 수험생들의 몫이다.

 어렸을 때 홍역을 치르고서 유아기를 탈출했던 것처럼,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우리네 인생의 길목에서 하나의 혹독한 통과의례가 수능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수능만이, 수능 점수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이 말은 비록 만족스러운 수능 성적표를 거머쥐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인생 역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수능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성공한 사람만을 꿈꾸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좋겠다.

 시험이 끝난 직후 고사장 정문 앞이라며 전화가 걸려왔다. "괜히 수능이 아니에요. 오류가 없으니 생전 처음으로 시험 볼 맛이 났어요. 정말 재미있어서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수화기 너머 녀석의 목소리가 달떠 있었다. 점심 먹고 치른 외국어 영역 시간에는 식곤증이 몰려와 10분을 푹 자다 화들짝 깨었다더니만, 과연 긍정의 달인답다. 포도 위를 나뒹구는 낙엽들이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만추의 어느 날, 젊은이들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까운 청춘의 하루가 그렇게 스쳐지나갔다. 아들 수능 보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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