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언제나 숱한 외로움을 남긴다.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 갑작스러운 가족과의 사별, 키우던 개와의 이별처럼 우리는 가지각색의 이유로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외할머니는 재작년 가을 당뇨병과 함께 찾아온 합병증 때문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몇 년을 병원에서 지내신 탓에 가을이 오는 지도 모르고 가신 할머니는 가을에 태어나시어 가을에 가셨다.
외가 집에 갈 때는 항상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어느 감상적인 뮤직 비디오처럼 코스모스가 잔뜩 핀 시골길을 걷다보면 영덕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래불 해수욕장이 나오고 그 길을 조금 더 걸어가면 누런빛의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논이 펼쳐진 외할머니의 마을이 나온다.
내 또래의 늦둥이 이모와 함께 메뚜기 사냥을 나가자고 졸라 날이 새도록 메뚜기를 잡고 집에 돌아오면 외할머니 특유의 방법으로 튀긴 메뚜기 요리가 그렇게 맛있을 수 가 없었다.
영덕하면 떠오르는 것이 제일 먼저 영덕대게다. 대게 철이 좀 일러도 어릴 때에는 제일 큰 다리 살이 그리 좋았다.
어린 마음에 몸 편찮은 외할머니를 위한 대게도 옆에서 지키고 있던 내가 다 먹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후회되고 염치없는 일이었다.
난 앞으로 얼마든지 자주 먹을 수 있겠지만 외할머니는 그렇지 못한데 그대 대게 살이라도 발라 드릴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11월 한참을 울던 엄마는 살아계실 대 자주 찾아뵙지 못한 불효를 되 뇌이며 외할머니의 흔적을 태웠다.
불길 속에 사라져가는 흔적에 엄마를 잃은 나의 동갑내기 이모도 그 이모를 낳은 할아버지도, 역시 같은 처지가 된 엄마도 모두 가슴 한 구석에 슬픔과 그리움을 새겼다.
외로움은 우리 곁에 아주 잠깐 머문다. 외로움이 지나가고 나면 생각하지도 못할 그리움이 찾아온다.
추억을 공유했던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그 추억마저도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외할머니의 얼굴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에 계신후로 중화자실과 일반 병실을 자주 옮겨 다니신 탓에 자주 볼 기회도 없었고 영덕과 남해는 거리상 너무 멀기 때문에 더 그런가 보다.
나에게는 너무나 생생한 메뚜기 사냥의 추억, 대게 삶아 먹던 작은 마당, 외할머니의 냄새가 배어있는 집까지 이제는 기억속의 저 편에서 머물겠지만 나는 절대로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 기억은 더욱 선명해져 내 곁에 머물 것이다.
오늘처럼 오랜만에 가을 다운 청명한 날, 외할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재)류호산 장학회 창립기념 제1회 류호산 백일장 고등부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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