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이순신 학교`를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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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이순신 학교`를 만들면 어떨까"
  • 한중봉 기자
  • 승인 2015.04.02 20:20
  • 호수 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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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호락(好樂好樂)한 남해사랑방 손님들의 `유쾌한 수다`

`승첩제, 운구행렬 재연` 넘어서  우리 마음속에 이순신 있어야

 호락호락(好樂好樂)한 남해사랑방 두 번째 손님으로 이순신 전문가 서재심 씨를 초대했다. 이 자리에는 김정화 남해여성회 회장, 박성재 남해역사연구회 유배문화연구소 소장, 박성룡 문화해설사, 김태웅 본지 편집국장, 이충렬 취재부장, 김종수 문화관광 담당시민기자, 김창근 전본지 편집국장 등이 참석했다. 사랑방은 지난 19일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본사 사랑방에서 열렸다. 진행은 한중봉 시민기자가 맡았다.
 

김정화
 한중봉 ^ 서재심 씨는 5일 동안 중국여행을 갔다 오늘 오후 4시 남해에 오셨다. 바쁜 와중에도 사랑방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사랑방이니 만큼 편안하게 질문해 달라.

 김정화 ^ 여는 말을 들으니 전문가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순신 장군을 연구한 분으로서 이순신 장군이 후손들에게 남긴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서재심 ^ 정신이 곧은 사람이 많아야 세상이 바로 선다. 자식들을 자존감 있는 아이로, 올곧은 아이로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훌륭한 생각을 많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성인이 돼서도 물욕에 빠지지 않고 허

박성룡
튼 짓도 안한다. 그럴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품격있는 세상이 된다. 이순신 장군의 현대적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중봉 ^ 이순신 장군이 남해에 머물거나 다녀간 기록이 있는 지 궁금하다.

 서재심 ^ 1593년 5월 7일 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에 바람이 불어 남해에서 자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또 백의종군할 때 미조첨사와 남해현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는 기록도 있다. 여수에서 사천 등지로 오가며 남해를 지나갔다는 기록이 10차례 나온다.



박성재
 박성재^ 이순신 장군의 인격형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라 보는가.

 서재심 ^ 이순신 장군의 집안은 원래 문반 집안이었다. 이름의 `순(舜)`자는 중국 요순시대 순 임금에서 따온 순임금 `순`이고 신하 `신`이다. `순임금같은 어진 신하가 되어라`고 이름을 수신이라 짓을 정도로 생각이 깊은 가문이었다. 또한 그의 조부 이백록은 조광조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아버지 `이 정`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장군이 10세때 쯤 아산으로 내려와 자식교육에 관심을 두신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는 장군이 13세 때 이미 사서삼경을 익혔다고 나온다. 어릴 시절 익힌 인문학이 바탕이 돼 훌륭한 무관이 된 것 같다. 가문의 내력과 부모의 교육, 많은 책을 읽은 점 등이 그의 인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창근
 박성재 ^ 관음포 지명이 언제 생긴 것으로 보는가. 관음사상이란 책에는 관음포와 거북선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재심 ^ 관음포의 원 지명은 `가는 개`(길게 생긴 갯가)였다. 우리나라 지명은 대부분 757년 당나라를 유별나게 좋아했던 신라 경덕왕 때 바뀐다. 고려말에 이미 관음포란 지명이 나온다. 가는개를 빠르게 발음하면 관음포가 되기도 한다.

 박성룡 ^ 우리나라에 진정한 멘트나 스승 없는 것이 서글프다. 그래서인지 이순신 장군이 더 갈망된다. 영화 명량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 남해도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남해는 이순신 장군이 순국하신 곳이다. 곧 이순신 순국공원도 완성된다. 남해를 이순신 장군의 중심지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중봉 ^ 크게 공감한다. 남해는 이순신을 너무 못 살리고 있다. 승첩제도 없어지고 운구행렬 재연도 중단됐다. 이번에 등자룡이란 새로운 요소도 생겼다. 이번 기회를 남해와 이순신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문화관광 정책을 잡아나가야 한다고 본다.

 서재심 ^ 제가 이순신 장군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것, 순간적인 것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남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 한 명 한 명 변화하는 것을 돕는다면 세상은 변한다. 우리는 거창한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로잡혀 있다.

 이충열 ^ 상주중학교 대안학교 지정을 계기로 남해가 대안교육의 메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물질에서 정신으로 다시 문화가 반전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이순신은 대안교육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 문무를 겸비한 장수 이순신을 이런 측면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김태웅 ^ 인문학이 뜨고 교육이 중요시 되어간다. 이순신을 교육에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멘트, 트렌트. 인격 등 키워드가 이순신과 맞아 떨어진다.

 김창근 ^ 우리는 난중일기라는 자신이 쓴 일기에 바탕해 이순신을 평가하고 있다. 이순신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 생각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일방적인 평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순신을 잘 모를 수도 있었다고 볼 때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현태 군수시절 보물섬사관학교를 한 적이 있는데 차라리 이순신 학교 같은 것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재심 ^ 난중일기뿐만 아니라 후손이 쓴 이충무공 전서 등 많은 기록이 있다. 기록의 중요성에는 깊이 동감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순신을 활용했다는 세간의 평가도 있는데 이에 동의하지 못한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이순신 장군을 존경해왔다. 난중일기가 분실됐을 때 동아일보에 찾는다는 공보를 낼 정도였다. 충렬사 현판만 봐도 이순신을 공부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임을 알 수 있다.

 박성재^ 우리 지역에 묻혀있는 보물을 어떻게 부각시킬 것이냐가 중요하다. 이순신도 그렇고 김만중도 그렇다. 지역 언론과 향우언론인의 역할이 크다. 남해를 인문학의 고장으로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고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김창근 ^ 남해의 이순신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승첩제나 순국공원을 넘어서 남해사람들 마음속에 이순신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순신은 어떤 사람이었다, 너도 이순신처럼 의롭게 행동하라고 가르쳐야 밑바탕에서 이순신이 살아난다고 본다.

 김정화 ^ 이순신이 있기까지는 주변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이순신 학교를 생각할 때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것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리더십`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이순신의 인격에도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

 서재심 ^ 이순신은 하늘을 감동시킨 분이기에 아직 우리에게 살아있다. 저의 이순신 문화해설이나 강의를 통해 한사람이라도 이순신 같은 사람이 만들어지면 바라는 것이 없다. 죽기 전에 저도 하늘을 감동시켜 그런 사람이 생기고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리라 믿는다. 

 한중봉 ^ 훗날 남해에 이순신 학교가 만들어지고, 그 시작이 남해시대의 호락호락한 사랑방이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사랑방 문을 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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