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막걸리 더는 맛볼 수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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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막걸리 더는 맛볼 수 없답니다!"
  • 김광석 기자
  • 승인 2015.04.08 14:51
  • 호수 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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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년간 남해인의 입맛을 사로잡아온 영지막걸리를 빚어온 정기출·이정례 씨 부부.
남해술도가 100년 역사 폐업신고와 함께 역사의 뒤란으로만 33년 술빚어온 정기출·이정례 씨 부부 "고마웠습니다" 

 각 학교의 동창회 행사가 집중되는 시기다. 이들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술이 있다. 그 술은 바로 영지막걸리. 그러나 이제 영지막걸리는 영영 맛볼 수 없게 됐다. 왜?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 어찌 된 사연일까? 술도가가 삼동면 영지마을 옛 난령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어서 영지막걸리로 통했지만 이 술도가의 정식 이름은 `남해주조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간판도 떼어지고 없었다.

 지난 1일 오후 주인장을 만나보기 위해 영지술도가로 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인기척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세 번쯤 눌렀을까? 인터폰을 통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셔요?", "예, 저 술 사러 왔는데요", "아이고 이를 어쩌나. 인제 술은 안 팝니다",  "왜요. 어르신?", "장사가 안 돼서 그렇지요. 세안부터 안하게 됐습니다. 미안합니다"

 한참동안 대문 앞에서 말을 주고받은 뒤에야 겨우 대문 안으로 들어오라는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장사를 계속하면 모를까 이미 문을 닫았는데 신문에 나갈 일이 있을까?", "영지에 술도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남겨둬야 후세들이 알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그때서야 두 어른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할머니가 차와 과일을 내오는 동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지난 1월말까지는 했는데 얼마 전에 세무서에 가서 폐업신고를 했어. 요새는 막걸리를 먹는 사람들이 있어야 말이지. 내가 34년생이고 저 사람이 40년생이야. 우리가 힘이 부치니 한 8년 전부터는 막내아들이 여기로 와서 계속했지. 근데 지난해부터 식약청 공무원이 와서 시설보완을 하라, 냉장탑차도 사라, 그러는 거야. 한번은 봐줄 수 있는데 두 번은 못 봐 준다고 으름장을 놔 사서 아들보고 물은 거야. 계속 할 거냐고? 아들이 손 사례를 치니 별 수 없었지 뭐…, 나는 전주를 거를 때 물과 1대 1로 걸러냈어. 그게 내 비법이야. 그래서 맛이 변하지 않았지. 그 맛을 보여줄 수 없으니 안타까워…"

 차를 내온 할머니가 거들었다. "우리는 마당까지 얼마나 씻고 닦고 했는데…, 사람들이 술 사러 와서 이 집은 위생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고 다들 그랬어. 위생시설기준 다 갖추려면 어디 한두 푼 들어가야지. 그리고 우리 아들이 마트 같은데 가서 낯 두껍게 비비질 못하는 성격이야. 넣어달라고 하는 데만 넣으니까. 시골가게나 구판장은 없어지고 큰 막걸리공장 막걸리가 다 치고 들어오니 우리는 밀려날 수밖에…, 안 하니 속은 시원해. 만들어 놓고 안 팔릴까봐 속 끓이는 것보다야 낫지 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 참 행사 철인데 막걸리 사러 왔다가 허탕 치는 사람들은 어떡해요?"
 "행사 때마다 말통으로 막걸리 사가는 사람들 많았어. 고향 왔다가 사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식약청이 간섭만 안 하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계속 하고 싶지만 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우리 아들만 실업자 됐지 뭐. 쯧쯧…"
 
씁쓸하고 안타깝고 화나고 지자체의 지원정책은 없어
 
 정기출·이정례 씨 부부가 영지양조장을 인수한 건 지난 1982년이다. 진교술도가에서 술을 빚는 직원으로 일 해왔던 정 씨는 영지양조장이 사업권을 내놨다는 소식을 듣고 남해로 왔다. 독립하고 싶은 꿈을 실현한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군내 10개 읍면마다 술도가가 있었고 술도가마다 영업권역이 정해져 있어 사업권을 사고팔았던 시절이었다. 술맛을 인정받은 정 씨 부부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10여년 만인 90년대 초에는 읍내사업권역을 가진 남해주조장을 인수하기까지 했다. 남해에서 가장 큰 술도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세월, 그리고 세상의 흐름까지 이기지는 못했다. 세상이 대형 할인마트 중심으로 유통 트렌드가 바뀌면서 브랜드 막걸리가 대세를 장악하게 되자 시골마을의 전통술도가들은 점점 설 자리를 빼앗겨왔다.
 더군다나 지난 2010년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세청으로부터 `주류의 안전관리`에 관한 업무와 권한을 넘겨받고, 2013년 7월부터는 주류 제조면허를 가진 업체들도 식품위생법의 안전시설 기준을 갖추도록 식품위생법 시행령이 발효되면서 재투자 여력이 없는 시골술도가들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가업을 이어받으려고 지난 8년 동안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으면서 영지막걸리의 명맥을 이어왔던 아들 경호(50) 씨도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바퀴달린 스텐 발효탱크 세 개가 고물상으로 가기 위해 마당으로 꺼내어져 있었다. 병 막걸리를 담았던 플라스틱 상자는 잠에 빠져 있었고, 고두밥을 펐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포개진 바가지들에는 물기조차 볼 수 없었다. 그 도구들은 마치 "우리는 계속 일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미 내렸던 `남해주조장`이라고 새긴 나무간판과 아직 라벨이 붙어 있는 빈 막걸리 병을 꺼내들고서 사진촬영에 응한 정 씨 부부는 "카메라를 쳐다봐주세요"라는 거듭된 기자의 요청에도 쉽사리 눈을 맞추지 못했다. 기자가 눌린 셔터. 그 셔터는 20세기 초 최봉열 영감으로부터 이어온 영지양조장의 100년 역사가 뒤란으로 물러나는 순간을 담은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서상막걸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곧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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