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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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봄
  • 남해타임즈
  • 승인 2015.04.08 17:57
  • 호수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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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면 독자
 `봄이 언제 오려나.` 혼잣말로 채근하였더니, 매화꽃 그윽한 향기를 앞세우고 천연덕스럽게도 봄이 다시 찾아들었다. 집 마당에 소리 소문 없이 꽃등을 밝힌 고놈이 내게만 은밀하게 꽃소식을 전하는가 하여 내심 흐뭇하였다. 그런데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보니 쳇,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난 것을 나만 몰랐던 듯싶다. 매화나무며 벚나무며 소금가마라도 풀어헤쳐 놓은 듯 온통 허연 꽃무더기다.  

 이맘때면 산에서도 짧은 봄을 놓칠세라 부산하다. 옛날 옛적 새아씨 고운 두 볼에 연지색 닮은 진달래는 진즉 꽃망울이 헤벌쭉 벌어졌다. 생강나무도 산달 앞둔 임산부마냥 연신 노란색깔 하품을 해대며 몸 푸는 연습중이다. 산벚나무가 꽃 폭죽 몇 방 터뜨려 주면 봄 산이 한층 근사해지겠다.

 조만간 철쭉까지 가세하여 온 산을 선홍빛으로 달구면, 바야흐로 봄꽃의 향연은 정점을 찍게 되리라. 그런데 철쭉이 어서 꽃잎을 거두어들이기를 학수고대하는 녀석이 있다. 그 화사한 자태며 그 매혹적인 향기가 보는 이의 마음을 흠뻑 젖어 들게 만드는 아까시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이웃집 담장의 넝쿨장미 또한 어느 해보다 더 농염한 색조의 열정을 안으로 감춘 채  일 년을 별러 온 것으로 안다. 춘정(春情)을 더는 못 이기고 달궈진 냄비 속 팝콘처럼 붉은 꽃망울을 팡팡 터뜨리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자연의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꽃들의 군무를 입장권 없이 마음껏 즐기고 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지 않던가. 애써 피어난 꽃들은 몇 날을 힘겹게 버티다가 바람 불고 부슬비 내릴 때면 이내 꽃비 되어 흩날린다. 무심히 지는 꽃잎을 감상하는 것은 제법 낭만과 운치가 있지마는, 어쩐지 우리네 인생처럼 덧없게 느껴진다. 활짝 벌어진 꽃잎이나 그새를 못 참고 허공에 지는 꽃잎이나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꽃을 보는 내 마음이 이토록 아린 것은 작년 봄 뜻밖의 사고로, 생주이멸(生住異滅) 즉 천지만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이치를 몸으로 절절이 깨달은 연유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건너 마을 가파른 고갯길을 자전거 타고 신나게 내려오다가 아스팔트 도로 위로 나뒹구는 사고를 겪었다.

 가슴이며 손과 다리가 시퍼렇게 천연염색이 된 것은 그렇다 쳐도 가슴뼈를 다쳐 숨 쉴 때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통증이 여간 아니었다. 삶과 죽음 사이가 그리 멀지 않음을 배운 것이 그나마 소득이랄까.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 생긴 멍 자국이 짙은 자줏빛 도라지 꽃잎 색과 똑 닮았다는 사실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재작년 비탈밭을 장만한 뒤로 평생 흘린 양보다 더 많은 구슬땀을 밭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남편이 농협 조합원으로 등록했다. 이 봄 역시 비파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심은 데 이어 몇 그루의 묘목을 마저 심고, 채소와 곡식 종자도 뿌릴 예정이다. 이만하면 시골살림 족하지 아니한가. 살아서 이렇게 봄을 노래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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