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개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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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 개인 아침
  • 남해타임즈
  • 승인 2015.05.12 12:11
  • 호수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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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이현숙
창선면 독자
 간밤에 빗줄기가 부지런히 창문을 두드려댔더랬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상큼한 공기가 기분 좋게 몸을 감싸는 아침이다. 달뜬 마음에 콧바람 쐬러 산책을 나섰다. 왠지 새소리는 더 명랑하고 나무와 풀은 더 싱그럽다. 마늘밭 마늘대가 갓 씻은 아가 얼굴처럼 윤기가 자르르하다. 한겨울을 노지에서 버틴 녀석들이 마냥 대견하다. 그새 흙길 바닥에는 연두색 융단 같은 잡초길이 났다. 즈려밟고 가자니 풀한테 죄스럽고, 빗물 고인 가장자리로 가자니 운동화한테 못할 노릇이라 길 위에서 난감하다. 난감하더라도, 생명을 향한 소리 없는 아우성과 빛이 넘치는 비 개인 아침, 살아있다는 게 이리 고마울 수 없다.

 아침 댓바람부터 부지런한 농부들은 산비탈 고사리 밭에 붙잡혀 있다. 고사리도 한철이라 요즘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이다. 두어 달은 족히 고사리 수확에 매달려야 하는데 할매들 허리 걱정이 앞선다. 지난밤 논 한복판에서 노숙한 트랙터는 진흙 투배기 꾀죄죄한 꼴로 아침을 맞았다. 밤새 술 마시고, 이른 아침 귀가하는 꼬질꼬질한 남자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논 옆구리 농수로에서는 쿨럭쿨럭 소리를 내며 물이 힘차게 흘러간다. 저리 흔해 보여도 생명체를 기르는 귀하디귀한 물이다. 어디는 가뭄으로 난리라는데 여기는 참 다행이다. 멀찌감치 밭에 선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고추밭에 지지대를 세우고 있다. 낯빛 희고 육덕진 도시청년풍의 손자는 일손을 거들러 내려왔지 싶다. 손자의 깜냥대로 탕탕 때려 박는데, 두세 번 내려쳐야 한 번이나 들어갈 만큼 망치질은 서툴다.  베테랑 농사꾼 할머니가 옆에 바짝 붙어 관리감독 중이다. 이때 저만치서부터 도로 위로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물체가 있었으니. 굴러가는 소리 하나는 국산 최첨단 무기인 K9 자주포에 밀리지 않을 경운기다. 그런데 워낙 낡다 보니 기계 내장에 탈이 난 모양이다. 고약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대놓고 방귀까지 뿡뿡 뀌면서 지나간다. 한참을 코를 쥐고 서 있는데 불현듯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소독차 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를 뒤집어쓴 채 온 동네를 돌아치던 개구쟁이 머슴아도 희미하게 떠오른다. 코찔찔이에다 공부도 시원찮고 내 발등에 돌을 던져 흉터까지 나게 한 호떡집 아들 녀석,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꼬.

 그런데 방금, 경운기가 내 옆을 요란하게 스쳐지나갈 때 속에서 뭔가 훅 치밀었다. 경운기 모는 아저씨와 짐칸에 앉은 할매가 고요한 내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게 맞다. 누가 어머니와 아들 아니랄까봐 모자가 어쩜 저리 똑같이 무표정한 얼굴인지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졌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고들 하더구먼. 벤츠보다 편한 경운기를 타고 밭으로 출근하는 늙은 아들과 더 늙은 어머니는 저 연세에 아마도 세상 부러울 게 없어라. 행복이 별건가, 저런 소박한 행복도 있네 그려, 마음이 짠하다. 어쨌거나 행복해도 안 웃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됐다.

 바다가 가까워진다. 천관녀의 집으로 김유신을 데려간 애마처럼, 내 두 다리가 바다로 이끌어 준 덕분이다. 길목에서 등나무 그늘막을 만났다. 등나무는 그 형상 때문에, `갈등`이란 단어에게 자신의 이름까지 빌려 준 착한 나무다. `갈등`의 `갈`은 `칡 갈`이고, `등`이 바로 `등나무 등`이다. 이름값 하느라 얽히고설킨 가지에 연보랏빛 등꽃이 한창이다. 어느새 당도한 바다는 이미 짙은 안개에 흠씬 젖었다. 탁 트인 맛은 없고, 몇 개의 섬이 수줍은 듯 떠 있는 호수 같은 바다다. 오늘 따라 왠지 텔레비전에서 봤던 베트남 하롱베이나 중국 쑤저우를 연상시킨다. 지상의 모든 풍경과 물속 풍경은 데칼코마니처럼 수면을 중심선으로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었다. 하늘에 떠 있는 해·이른 아침 고기잡이 나온 어부와 어선·바닷가 납작한 집들·산과 나무가, 바다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쩔거나, 저토록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동백나무 작은 군락지에 들어서니 한때는 아기 주먹만 했던 동백꽃들이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을 뒤로 한 채 바닥에 죄다 납작 엎드려 있다. 철쭉과 유채는 그런대로 전성기다. 빨갛고 노란 조합이 촌스러워도 정겹기는 그만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큰길을 놔두고 일부러 논둑길로 살살 빠져 나왔다. 그러다 무심코 양옆을 보니 빗물 고인 빈 논마다 아침 해가 하나씩 들어앉은 게 아닌가. 즈믄(숫자 `천`의 순우리말) 논에 즈믄 해라니! 고운 해야, 그나저나 어쩌다가 그 속에 풍덩 빠진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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