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과 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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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과 악행
  • 남해타임즈
  • 승인 2015.06.23 14:20
  • 호수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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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현 숙
창선면 독자
 산책길에 웅덩이를 만났다. 근래 비가 잦더니 물이 채 못 빠져나간 모양이다. 꼼짝없이 흙탕물에 발을 적실 상황이라, 길을 돌아가야 하나 어쩌나 난감하던 그때였다. 웅덩이 가장자리로 점점이 놓인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공사장에서 폐기물 처리된 깨진 블록 조각이다. 겉보기야 어떻든 누군가의 따뜻한 배려가 담긴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고민을 덜었다. 세상을 찬찬이 들여다보면 감사할 일들이 널려 있다.

 `2002월드컵`을 치르던 해, 서울 중구에 있는 모 은행 소공동 지점을 방문했다. 예금 청구서를 제출하고 잠시 뒤 호출되어 창구로 갔는데, 직원에게서 돈을 끼워 넣은 통장을 건네받는 순간 뭔가 이상이 있음을 직감했다. 통장이 예상 밖으로 두툼했기 때문이다. 선 채로 돈을 세어 볼 수는 없어 고객 대기석으로 돌아와 통장을 살폈다. 일단 통장에는 내가 청구한 금액 그대로 찍혀 있었다. 다음으로 지폐를 세어 보니 액수가 정확하게 10배였다. 단위를 착각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창구로 다가가 아무 말 없이 돈과 통장을 내밀었다. 통장을 펼침과 동시에 사색이 된 직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10분의 9를 뺀 나머지 돈과 통장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게 돌려주었다. 모든 것이 침묵 가운데 이루어졌고, 은행 문을 나설 때까지 그녀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말문이 막힐 만큼 당황한 그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아마 초짜였는지, 그 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으리라.

 한번은 거리에서 외국인근로자가 길을 물었다. 건강이 많이 안 좋아 종합병원에 간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반 년 전에 왔다는데 말이 무척 어눌했다. 그 바쁜 종합병원 의사들이 서툰 그의 한국말을 얼마나 귀담아 들을지 걱정스러웠다. 안 되겠다 싶어 근처 가게로 데리고 가서, 한 시간을 넘게 청년의 증세를 일일이 묻고 거듭 확인한 내용을 종이에 적었다. 의사에게 당부의 말도 따로 적었다.

 쪽지를 의사에게 보이라고 단단히 이른 후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운전기사에게 요금을 넉넉하게 지급하고, 병원까지 잘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 뒤 청년을 태웠다. 혹시나 해서 차량번호를 메모해 두었다. 청년은 깊고 큰 눈망울에 눈물을 담은 채 `고맙습니다.`를 되뇌며 떠났다. 타국에 온 23살 청년이 잠시나마 세상은 따뜻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게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할 빚이 있다. 매사 철두철미하신 공무원 신분의 야마모토 아주머니가, 법무대신의 허가증을 포함한 열두어 가지 서류를 챙겨 서울 우리 집까지 날아오신 고로, 순조롭게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도착 당일부터 한 지붕 아래 두 민족의 한솥밥 생활이 시작되었다. 함께 먹고 자며 학비는 물론 전차 정기통학권까지 대주셨고, 아파트 방 3개 중에 다다미방 2개는 협소하다며 양식풍의 북쪽 너른 방을 내어 주셨다. 처음 몇 달은 히타치 토스터로 빵을 굽고 도시바 세탁기로 옷을 헹구면서도 가슴 한편의 가족과 서울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이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렇게 일 년이 가까워질 무렵,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불거졌다. 사소한 관습의 차이가 한·일 양국의 미묘한 감정으로 비화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간 누적되었던 식습관이나 생활양식에서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내가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 곁을 영영 지켜 주었으면 하는 아주머니의 기대와 바람이,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청춘에게는 구속으로 느껴졌다. 마침내 정신적 스트레스를 못 이겨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려는데, 주위의 거센 만류와 도움의 손길이 나를 다시 주저앉혔다.

 두어 달이 지나 아주머니 댁을 나온 뒤로 일본을 떠날 때까지 한 번 뵈었다. 귀국하고 한동안은 이따금씩 서신을 주고받았지만, 그마저 끊긴 채 무심한 세월만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한창 혈기 왕성한 시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답시고 아주머니에게 소홀했던 나의 불찰이다. 사실 그 어떤 사죄의 말도 고베의 어느 여름, 처음 나를 본 순간 운명을 감지하셨다던 아주머니에게는 옹색하고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지 모른다.

 국경을 초월하여 그토록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이니, 나의 허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너른 세상을 경험토록 해 주신 그 은혜야말로 백골난망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은 강물에 새기라는데, 아주머니와의 은혜로운 인연은 평생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그리고 당신의 크나큰 사랑에 감사했노라고 또 행복했노라고, 바람에 실어서라도 부디 이 말만은 전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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