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시대, 남해를 말하다 호락호락(好樂好樂)한 남해사랑방`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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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시대, 남해를 말하다 호락호락(好樂好樂)한 남해사랑방` 10
  • 한중봉 기자
  • 승인 2015.07.14 11:03
  • 호수 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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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는 여성인권의 문제, 명예회복 절실"

 

`남해시대, 남해를 말하다 호락호락(好樂好樂)한 남해사랑방` 10

김정화 남해여성회 회장
"일본군위안부는 여성인권의 문제, 명예회복 절실"

 `남해를 말하다. 호락호락(好樂好樂)한 남해사랑방` 열 번째 손님으로 김정화 남해여성회 회장을 초대했다. 김정화 회장은 남해여성회 회원들과 함께 남해에 생존해 계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94·남해읍)를 2013년부터 만나 뵙고 있다.

 주 1회 이상 할머니 댁을 오가며 할머니의 아픔과 원한을 마주하면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미술 ,원예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책과 신문도 읽어드리고, 나들이 보조를 하면서 할머니와 남해여성회는 박숙이 할머니의 표현대로 딸 같은 사람들로 관계 맺어 왔다.

 할머니의 가장 큰 소원이었던 강연사업도 2014년 상반기 7개의 군내 중·고등학교로 모시고 가서 진행했다. 지팡이를 짚고 단상에 오르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남해의 학생들이 받은 충격과 감동도 꽤 큰 시간이었다고 한다.

 아울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남해 청소년실천단 교육과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집회 참석,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과 나눔의 집 방문 등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의 삶이 미래시대인 청소년들에게로 다가설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위안소 생활 당시 폭행과 고문으로 고생해 오시던 할머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2015년에도 할머니 건강 상태를 살펴가며 꾸준히 찾아뵙고 있다.

 요즘도 박숙이 할머니의 "내 가슴에 묻어두었던 한을 풀어내고 싶다"는 의지를 받들어 할머니 댁 마당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이야기 마당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박숙이 할머니의 증언과 삶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기록 증언과 자료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군위안부, 그 찬란한 슬픔을 남해군민과 함께`라는 주제로 사랑방 문을 연 김정화 회장의 여는 말을 전한다.

어떻게 할머니를 만났나

 현재 한국에는 238명의 일본군위안부가 등록했는데, 지난 6월에 세 분, 7월에 한분의 일본군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존자는 48명밖에 남지 않았다. 박숙이 할머니도 올해 들어 기운도 떨어지고 청력과 시력이 나빠져 가끔 사람을 못 알아보실 때도 있어 걱정스럽다. 박숙이 할머니는 2012년 9월 237번째로 일본군위안부로 등록하셨다. 당시 마창진시민모임의 이경희 대표님이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찾아뵌 후 등록하셨다고 들었다. 그 후 이경희 대표님이 할머니를 돌보셨는데, 남해까지 드나들기가 수월찮아 자주 찾아뵙지 못함이 죄송스러워 2013년 1월에 남해여성회에 할머니를 부탁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숙이 할머니 이야기

 할머니는 1923년생을 고현 관당마을에서 태어나셨다. 16살 되는 1939년 이종사촌 언니와 마을앞 갯벌에 조개 캐러갔다 둘 다 일본군에게 강제 납치당하셨다고 한다. 할머니 기억으론 당시 주변에 본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후 배로 일본 나고야로 옮겨진 후 많은 조선여자들과 다시 상하이로 옮겨져 위안소에 갇히게 됐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후 6년 동안 말로 하기 힘든 생활을 겪고 일본이 패망한 뒤 위안소를 도망쳐 나와 중국에서 1여 년 동안 생활하다 우여곡절 끝에 부산으로 돌아와 3년 가까이 목욕탕 일 등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부산에 살면서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많은 애를 썼지만 자신이 아는 지명이 `관당` 밖에 없어서 찾지 못하다가 어릴 때 어머니랑 함께 간 화방사를 기억해 내, 그것을 단초로 고향 남해로 10여년 만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고 혹시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한 것이 탄로날까봐 읍 오동마을에 둥지를 틀고 줄곧 사셨다고 들었다.
 
명예회복 조처 있어야


 저도 할머니를 뵙고 나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할머니는 당신의 슬픔을 잘 승화하시어 우리 아이들에게 "커서 무기를 많이 만들어라"고 주문하신다.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연상케 하는 강한 무기를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당신의 아픔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는지 느낄 수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신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이지만 우리 내부에서는 당사자 문제 혹은 민족적 감정으로 대하곤 하는데, 본질적으로는 여성인권의 문제이다. 아울러 보상을 넘어서 진상이 정확히 알려지고 명백한 사죄와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하는 문제이다.
 할머니께서는 종종 "이 한 덩어리를 어떻게 하면 풀고 눈을 감을꼬"라며 가슴을 치실 때는 저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러면서도 "내가 죽으면 너거들이 내를 써 무라. 다시는 내 같이 사는 사람 없고로!~"라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이런 말을 하시는 분도 나오지 않아야 되며,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호락호락(好樂好樂)한 남해사랑방 손님들 무슨 이야기 나눴나

"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군민모임 만들자"

 호락호락(好樂好樂)한 남해사랑방 열 번째 자리에는 김정화 남해여성회 회장을 비롯 문경호 서면 평안교회 목사, 이화심 남해자원봉사센터 센터장, 정상천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 남해군지부장, 변복자 가정행복상담소 실장, 본지 이충렬 취재부장, 이아영 취재기자, 한중봉 사랑방지기가 참석해 토론을 펼쳤다.
 
 이화심  아까 김정화 회장께서 238명의 일본군위안부가 정부에 등록돼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등록 못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으실 것 같다. 미국은 전쟁포로를 영웅으로 대하지만 중국은 전쟁 쓰레기(War Trash)로 취급한다는 `하진`이란 중국작가의 소설을 읽은 바 있다. 일본군위안부는 자기의 잘못도 아닌데 어두운 곳에서 힘들게 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픔을 치유하고 보둠아 드려야 하는지가 우리시대의 과제다. 아울러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
 
 김정화  일본군위안군 문제는 당사자인 할머니들과 시민단체에서 먼저 꺼냈다. 초창기 우리 정부는 오히려 쉬쉬하는 분위기였고 위안부문제 해결 촉구하는 단체도 오히려 일본 내에 많았다. 위안부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24년째 이어져오고 있으며, 엠네스티 등 국제단체와 정대협 등 국내 단체들이 정부를 압박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성과로 지금 할머니들은 생활지원금과 의료, 간병서비스 등을 받고 있다.  
 경남도내에서도 위안부 관련시민단체들의 도 차원의 지원조례를 추진하고 있으며, 곧 알찬 열매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보상과 위로를 넘어서 역사를 잊지않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언집을 넘기고 역사관 건립 등을 통해 미래세대에게 이런 아픔을 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남해여성회는 점차적으로 그런 일을 해 나가고 있다.
 
 정상천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들도 일본군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다. 남해군에서 2003년과 2009년 조사결과로는 그 수가 9천여명에 달했다. 생존자는 94세에서 96세까지로 박숙이 할머니와 비슷한데, 현재 열일곱분이 생존해 계신다.
 일본의 전범기업은 4천여개에 달한다고 알려졌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72개이며 이들을 상대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확실한 보상과 더불어 정확한 역사가 기록되길 당사자와 유족 모두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김정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도 명백한 사죄와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이분들은 위안부 문제가 여성인권에 대한 탄압으로 보고 현재도 같은 탄압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 콩고지역 여성 돕기와 기지촌여성돕기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위안부는 우리나라와 더불어 동남아시아 등지에 상당히 많았다. 결국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여성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전쟁반대, 평화수호와도 깊은 관련성이 있다.
 
 한중봉  남해군에서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해 소년상을 건립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들었다. 이 외에도 앞으로 우리가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짚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김정화  소녀상 건립은 남해군에서 추진하고 있으며 8월 15일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많은 군민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건립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모금을 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예산으로 건립된다. 남해여성회는 앞으로 이 공간이 산 교육의 장으로 잘 활용되길 희망하고 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교육을 통해 위안부해설사를 양성해 나갈 생각이다. 이 밖에도 미술작품 공모전, 수요집회 참석, 경남지역 중고동아리 인권캠프 참석 등도 연계해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생각이다.  
 
 이아영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일본군위안부 박물관이 있다. 우리 남해에도 일본군위안부 할머니가 계신만큼 수학여행 코스에 박물관을 넣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변복자  박숙이 할머니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교훈 삼아야 한다. 아울러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성 인권이 억압받는 곳이 많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로 가시 한번 경종을 울리고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문경호  그동안 남해여성회에 활동에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앞으로 소녀상이 건립되면 군민들의 인식도 확장되는 만큼 `일본군위안부를 기억하는 군민모임`등을 만들어 여성회의 고민을 받아 안았으면 좋겠다. 더욱이 박숙이 할머니께서 건강도 좋지 않으시다고 하니 하루 빨리 모임을 만들어 외롭게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충열 
 일본군위안부와 일제강점기징용피해자는 동시대 같은 아픔을 지닌 피해자다. 다 같은 조명하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노력이 있기 희망해 본다. 살아생전 다 같이 한 자리에 만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정화  무엇보다 오늘 남해시대의 호락호락한 사랑방을 통해 역사를 기록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돼 기쁘다. 이 기쁨을 주신 분들께 먼저 `일본군위안부와 함께하는 군민모임`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다.(웃음)
저는 오늘 주제를 전하면서 `찬란한 슬픔`이란 표현을 했다. 그것은 16세의 어린 소녀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박숙이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저의 감정을 담은 표현이다. 박숙이 할머니에게 "소원이 무엇이냐"여쭈면 "내 나이 열여섯으로 돌려 달라. 그것 하나 뿐"이라신다. `일본군위안부와 함께하는 군민모임`이 만들어져 할머니에게 `또 다른 모습의 열여섯`이라도 선물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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