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들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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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들 가십시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5.07.14 12:01
  • 호수 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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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호 시인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 일이 꼭 해야 하는 일인지, 하는 방법은 어느 길이 유리한지를 따져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다짜고짜 일방통행의 처리방식은 언제나 소통부재를 초래하고 막힌 도랑은 썩고 넘치며, 넘친 폐수는 큰 피해를 남기고서야 멈춘다. 구비가 있을 때에도 잘 흐르게 하는 지혜, 건강에는 휴식이 있듯이 세상만사 쉬어가야 한다. `대문자만으로 채워진 책은 읽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일도 쉬어가고, 사랑도 쉬어가고, 싸움도 쉬어갈 수 있을 때 세상은 햇살도 바람도 내편이다."

 

 자연이 움직이는 것을 눈여겨보면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억지가 없다. 심한가뭄이나 강한 태풍 등에 대하여 사람들은 기상이변이니 이상기후니 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자기모순을 합리화하고자하는 자기도피일 뿐, 자연은 절대로 억지가 없다. 가뭄이나 태풍뿐 아니라 지각을 변동시키는 지진이나 화산의 분출도 나름의 조짐이 있었고, 오랜 세월 쌓아온 원인이 표출되었을 뿐이다.

 사람의 신체도 자연의 일부이다. 따라서 억지가 없다. 순리를 거스르는 생활습관이 쌓여서 성인병이나 감기 같은 신체의 이상신호가 되고, 이것이 짙어지거나 합병증을 일으키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이렇게 위험을 자초하는 현대인의 나쁜 습관 중의 하나는 쉴 줄 모르는 무지이다. 일을 열심히 잘하는 것보다 잘 쉬고 신체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잘 순환시켜야 함에도 과도한 욕심이 신체를 혹사시켜서 질병과 사고를 유발하게 된다.

 필자는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휴게소에 자주 들른다. 내리면서 타이어 공기압도 살펴보고, 용변을 보고 물을 먹기도 하지만, 특산물 가게에 들러서 그 고장에서는 어떤 선물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어떤 때는 휴게소 매장에서 경주 보리빵도 있고 청도 감말랭이도 있는데, 내 고향 `남해`는 왜 이름조차 없을까?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시선을 휘두르기도 한다. 기껏해야 20분미만의 짧은 휴식이지만 졸음도 쫓고 혈기를 돋우어 새 출발을 한다.

 어느 날, 휴게소에 내려 타이어를 살펴보니 바람이 절반쯤 빠져있었다. 그 상태로 쉬지 않고 과속이라도 하는 날에는 대형사고가 날판이었다. 날쌔게 달려온 수선차량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 모금 들이키는 커피 맛은 오죽이나 좋은지, 산다는 건 이런 거다. 행복이란 이런 거다.

 논 갈던 황소에게 풀 한 줌을 맡겨두고 논가에 퍼질고 앉아 농주 한 사발을 들이키던 농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휴식의 의미는 그 옛날 단지 가축의 힘을 빌렸을 뿐 대부분의 농사를 인력에 의지했던 고단함에 비추어볼 때, 그것은 고도의 지혜였고 살아가는 순리였다.

 비단 농사뿐이랴! 몸으로 하지 않고 머리로만 하는 일,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하는 인간관계의 일들도 다 쉬어갈 타이밍이 있고, 쉬어갈 거리가 있고, 나누어야 할 교감이 있다.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 어느 몇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조직은 건강할 수가 없다. 다수의 이익과 지지가 담보되어야하는 행위가 곧 정치이다. 어느 가정에 말이 없는 자식이 있다는 것은 아비의 정사가 그릇된 증거이다. 저 놈은 내 아들이니까 내 뜻에 따라야지, 그러다가는 아비의 지위가 무너질 시간이 임박할 수 있다.

 바둑 중계방송을 보노라면 대국 중에 선수가 화장실에 간다. 가지 않는 선수에게 유리하지 않을까? 범인의 생각이다. 여태까지의 대국에서 화장실에 다녀온 선수의 승률을 통계화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프로 선수들은 바둑판을 머릿속에 다 그리고 있어서 몸이 어딜 가든지 간에 계산은 다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용변을 볼 뿐이지 휴식하는 것은 아니다.

 고집이나 고정관념은 내려놓지 않고 아무 말이 없다고 해서 밝은 미래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화장실 간 선수를 얕보다가는 큰코다친다.

 서양 사람들은 밥 먹는 시간이 길다. 신체에게 음식을 소화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내 몸은 물론이고 남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 일이 꼭 해야 하는 일인지, 하는 방법은 어느 길이 유리한지를 따져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다짜고짜 일방통행의 처리방식은 언제나 소통부재를 초래하고 막힌 도랑은 썩고 넘치며, 넘친 폐수는 큰 피해를 남기고서야 멈춘다. 구비가 있을 때에도 잘 흐르게 하는 지혜, 건강에는 휴식이 있듯이 세상만사 쉬어가야 한다. `대문자만으로 채워진 책은 읽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일도 쉬어가고, 사랑도 쉬어가고, 싸움도 쉬어갈 수 있을 때 세상은 햇살도 바람도 내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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