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슬픈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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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슬픈 농민들
  • 한중봉 기자
  • 승인 2015.11.23 21:06
  • 호수 4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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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봉 기자의 농민대회 참가기

준비된 여성대통령임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통령 후보는 쌀값을 17만원에서 2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담은 현수막을 전국 농촌 방방곳곳에 내걸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농촌을 잘 살게 만들었다고 믿는 많은 농촌 유권자들은 박근혜 대통령도 농촌을 알뜰살뜰 챙길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공약은 실천되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으며 농촌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2012년 5만6000원 하던 쌀 40kg가격은 2013년 5만4000원, 2014년 5만2000원대로 내려오더니 올해 결국 4만원 대로 곤두박질쳤다.

절망감에 빠진 농민들은 지난 14일 서울로 향했다. "서울 한번 가서 고함 한번 지르고 팔뚝 한번 쳐들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농민들이지만 농번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로 갔다. 가만있자니 억울해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함이라도 한번 지르는 심정으로 새벽밥을 먹고 농민회가 마련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만있으면 어디까지 처 박힐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가족이나 주변의 반대를 애써 모른 척 하게 했다.

14일 당일 서울에는 가랑비가 왔다. 갈 곳 없는 농민들의 처량한 신세를 말하는 듯 했다. 싸구려 우비에 몸을 가린 상경 농민들은  "쌀값 보장하라",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도입하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하지 말라"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오후 2시에 시작된 2015 농민대회는 5시 가량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리는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그러나 농민들의 행진대열은 얼마가지 않아 경찰에 막혀 멈춰 섰다. 그렇게 행진은 마무리되고 새벽 7시 남해를 떠난 사람들은 저녁 7시를 넘어 서울을 떴다.

돌아오는 길에 전남 보성의 한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착잡한 심경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남해에 도착했다. 버스 시계는 새벽 1시 30분이었다. 비록 몸은 파김치가 됐으나 그나마 이 땅의 농민으로서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 지친 심신을 달래줬다.

물대포를 맞은 농민은 현재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몇몇 진보 언론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를 다루지 않거나 `운동권 출신 농민`이라며 사태의 본질을 흐리며 물 타기를 하고 있는 형상이다.

종편과 일부 지상파를 비롯한 거대 보수언론에서는 그날의 집회참가자들을 과격시위자, 나아가 폭력세력으로 몰고 가고 있다. 농민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들의 주장이 타당한 지를 다루는 언론은 극히 드물고 시위의 과격성과 경찰 진압의 폭력성에만 보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락값 딸어져 상처받고, 농산물 개방화 협정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힘 빠지고 이제 항의마저 함부로 못하게 하는 꼴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강요하는 정부와 언론 권력이 농민들을 더욱 힘들고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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