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문화해설사 서재심의 이순신 이야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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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문화해설사 서재심의 이순신 이야기 32
  • 남해타임즈
  • 승인 2015.12.29 17:57
  • 호수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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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1)
서재심문화해설사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수군은 궤멸을 당하는 와중에 경상우수사 배설은 판옥선12척을 가지고 도망을 쳤다.

백의종군을 하고 있던 이순신에게 선조임금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을 하고 난 후 이순신은 조선수군을 재건하기 위해서 남해안을 시찰하면서 장흥의 회령포에서 배설로부터 판옥선 12척을 인수인계 받는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이순신에게 판옥선 12척을 인수인계하고 칠천량 해전에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 했는지 죽음이 두려워서 그랬는지 또  도망을 친다. 그러나 배설은 전쟁이 끝난 뒤 고향에서 권율에게 붙잡혀서 참수를 당한다.

군인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선택한 결말이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 준 예라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차라리 싸우다가 전사를 했다면 치욕스럽게 역사에 이름이 남는 일은 없을 것인데 참 아쉽다.

그러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되고 나니 이순신 주변에는 승병, 의병, 그리고 지난날 같이 싸웠던 수군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게 된다. 전쟁은 죽고 사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재임명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우리 사또가 다시 왔다. 이제는 안 죽을 것이다. 천천히 찾아오너라. 나는 먼저 사또를 따라간다"고 하면서 이순신의 뒤를 따라 나섰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순신에게 모여 든 이유가 무엇일까? 원균이 조선수군을 지휘 할 때는  병사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부대를 벗어나려고만 했다는데 이순신이 다시 돌아왔다고 하니 의병, 승병, 피난민까지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또 곡창지대인 전라도 지주들이 군량미도 자발적으로 이순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모두가 이순신을 믿었다는 증거이다. 이순신의 능력과 인품을 믿고, 신뢰를 했기에 자발적으로 이순신 주변으로 사람들과 물자들이 모여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칠천량에서 수군이 궤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선조임금은 홀로 적은 전선과 패잔병들을 데리고 떠돌 것이 아니라 육지에 올라 권율휘하에 합류하라고 이순신에게 명령한다. 수군을 폐지한다는 뜻으로 한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이순신이 한 그 유명한 말이 있다.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면 할 수 있습니다. 신이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 할 것입니다" 곧 이어 이순신은 회령포를 지나고 적들의 흔적을 찾아 서해로, 서해로 나아갔다. 이미 칠천량의 싸움에서 이긴 적들이 서해안으로 많이 이동을 했기에 이순신은 적들을 맞아 싸울 적절한 장소를 찾아 갔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9월 7일 탐망군의 첩보에 따르면  적선이 어란포에서 집결해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 수군을 치려고 모였다` 는 보고를 받는다. 이순신은 적과 운명적으로 맞닥트려야 한다는 것을 예감한다. 그러나 적은 우리보다 10배나 많은 전선을 거느리고 있었고 조선은 판옥선 13척으로 유리한 장소를 선점해야 하는 상황이다.

원래 이순신이 선조임금에게 장계를 올릴 적에는 판옥선이 12척이었다. 그런데 명량해전을 치룰 시점에는 판옥선이 13척이 있었다.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 당시 녹도만호였던 송여종이 판옥선 한 척을 추가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 주장은 송여종의 비문에 적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주장은 칠천량에서 전라 우수사 이억기가 전사를 하고 새로 발령을 받아 온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한 척을 타고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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