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문화해설사 서재심의 이순신 이야기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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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문화해설사 서재심의 이순신 이야기 38
  • 남해타임즈
  • 승인 2016.02.02 11:37
  • 호수 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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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不滅)의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亂中日記)! (2)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신문에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게 된다.

서재심문화해설사


1월 17일까지 `난중일기`를 찾지 못하면 전 수사기관을 동원하여 범인을 체포 엄벌하겠으며 범인 스스로 뉘우쳐 자수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면 그 죄에 대해서는 일체 불문에 붙이고 `난중일기` 행방을 알려주는 시민에게는 특별보상금을 주겠다...

그런데 이 담화문이 나간 다음날 부산에서 도난범의 조카가 신고를 했다. 도난범들이 일본으로 빼돌리려고 했던 `난중일기`를 이렇게 해서 되찾게 되고,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헬기로 공수되었다. 그리고 덕수궁 미술관에 보관되었다가 이후 다시 현충사 유물관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후 도난사건으로 놀란 대통령의 지시로 `난중일기` 영인본 50점을 제작해 국가 중요 관련기관에서 나누어 보관하게 됐던 것이다. 흔히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이 군인이었기에 명분상 무인이었던 이순신을 더욱 부각시켰다고 쉽게 말을 한다. 그러나 이순신 관련 공부를 해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30년대 춘원 이광수가 쓴 `이순신` 이란 소설에 반했고 그래서 늘 존경했기에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단 한번 사고를 당한 그해 외에는 매번 이순신탄신일에 현충사 참배를 했다.

작가 김훈은 영문학과를 다니던 대학교 일학년 때 도서관에서 노산 이은상의 난중일기 번역본을 읽은 이후 자신이 영미 시(詩)를 공부하고 외우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학교를 그만 두고 군대를 갔다고 했다. 군 시절 야간근무를 하면서, `먼 훗날 이순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난중일기를 읽은 30년 후 난중일기가 숙성 발효하여 탄생 한 것이 `칼의 노래`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반한 이후 15년 동안 이순신을 예찬하고 있다. 진정한 문학이란 `진실한 글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래도 허구적인 면이 많이 가미된 소설이란 문학작품도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이순신의 `난중일기` 는 칠 년 전쟁 그 혼란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정확하게 날씨를 기록하고 있었던 일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쓴 글이니 그 어떤 문학작품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큰 감동을 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난중일기`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고 신문에서는 초고본이 2014년 12월 31일까지만 현충사 전시실에서 전시를 하고 영원히 수장고에 들어간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12월 31일 아산으로 갔다. `오늘은 난중일기 진본을 마지막으로 눈에 자세히 담아야겠다. 그리고 1월 1일 아침에는 맨 처음 이순신 묘소에 참배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현충사는 휴일이었다. 그래서 "야, 이제 난중일기 진품은 못 보는 구나! 어제 올 걸?"하며 탄식이 절로 났다. 

그 아쉬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너무 섭섭해 혼자 자꾸만 넋두리를 하면서, "우리 아들이 충무공 이순신처럼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더욱더 보여 주고 싶었는데…"라는 아쉬움에 넋을 놓고 있으니 남편이 "어쩔 수 없지 다 인연이 안 닿아서 그런거야"라며 필자를 위로했다. 필자는 난중일기를 보지 못해 너무도 서운한 마음을 안고 아산에서의 밤을 보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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