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운산 노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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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운산 노을 길
  • 서재심 | 남해바래길 운영위원
  • 승인 2016.05.03 09:57
  • 호수 4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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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문화해설사 서재심의 남해바래길 10
서 재 심
남해바래길 운영위원

아직 바람이 쌀쌀한데
나는 산모롱이에서 노을길이란
책을 꺼내 읽습니다.
연두색 새싹이라는 주제, 3페이지
연분홍색 진달래라는 소제목 5페이지,
비취색물빛이라는 아름다운 글귀가
7페이지 ......
그리고 끝자락에 그리움이 보입니다.
나는 그리움이란 아련한 형용사에  반해서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아껴가며 다시 읽고, 욕심내어 가슴에
담습니다.
읽은 그 페이지를 다시 읽고,
다시 읽고를 반복하다가
조용히 책을 닫았습니다.
너무 보아서 달아 없어질까 염려되어
다음 봄날에 다시 꺼내어 볼랍니다.
언제까지나 노을길을 꺼내어 볼 수 있는
우리는
어느 별에서 온 시인들인지…


남해바래길 제14코스 망운산 노을길은 서면 노구마을에서 서상마을 스포츠파크까지 총8.5km에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길이다.

이 길을 걸을 때는 서쪽으로 지는 아름다운 노을만큼이나 멋진 이야기를 남기고 간 남해출신 불교계의 거성인 가직대사를 떠올려 볼 일이다.

지인들과 삼삼오오 짝하여 걸으면서 가직대사가 심어 놓은 `가직대사삼송`에 담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는 노을만큼이나 강렬한 가직대사이야기에 우리 모두 반하게 될 것이다.

가직대사는 영조시대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법력이 비범했다고 하는데 가뭄이 심한 어느 해 무주를 지나다가 농부가 물이 나올 만한 곳을 알려달라고 하니 우람한 나무아래를 파 보라고 했다 한다. 그런데 농부가 그 나무아래를 파다보니 큰 암반이 있어 더 이상 파내려 갈 수가 없어 가직대사에게 욕을 하고 화를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직대사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뚝을 쌓으라고 했고 뚝을 다 쌓으니 지팡이로 큰 바위를 몇 번 내리치니 물이 꽐꽐 쏟아 올랐다고 한다. 그 이후 그곳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고 그래서 무주 용담에는 가직대사에게 감사의 뜻으로 기념비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어느 날은 화방사에서 큰 행사를 마치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가직대사가 술 방울을 자꾸만 뿌리길래 사람들이 왜 그런가 하고 물었더니, "지금 하동 칠불사에 불이 났는데 내가 물을 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제 불을 다 껐다" 하고는 마저 술을 마시더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보니 그 시간에 칠불사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불이 꺼졌다는 것이다. 그런 가직대사가 말년에 고향 선산의 북쪽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통영에 가서 돌아오는 길에 소나무 세 그루를 가져와서 남상, 중리, 노구에 심었는데 그 소나무들이 살아 가직대사의 전설이 되고 있다.

망운산 노을길은 여수로 지는 노을이 가직대사의 삶만큼이나 놀랍고 강열하다. 그래서 이 길은 노을이 질 시간에 맞춰 뜻 맞는 사람과 자분자분 걸어보면 더 의미있다.

망운산 노을길, 그 길에서 당신도 나도 가직대사처럼 길이길이 전설로 남을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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