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중 학부모들, 남해바래길 ‘화전별곡길’에 애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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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중 학부모들, 남해바래길 ‘화전별곡길’에 애닳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6.05.24 21:20
  • 호수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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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길 제5코스 걸으며 ‘젊은 사림인 자암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낀다

상주중학교 학부모들은 지난 21일 남해바래길인 ‘화전별곡길’을 걸으며 남해의 아름다운 풍광에 가슴에 담으면서 서로간의 화합을 다졌다.

이날 상주중 학부모들은 해설사로부터 화전별곡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해 들으며 이에 얽힌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남해 내산의 단풍과 편백나무, 꽃내 마을인 `원예예술촌`, 우리나라 최초의 테마마을로 조성되어 벤치마케팅이 되는 `독일마을`, 삼백년 전쯤 우리선조들의 지혜로 바람을 막고 고기를 부르는 인공조림 숲 `물건방조어부림` 등 남해의 빛나는 명소를 거치는 이 화전별곡길에는 조선조 기묘사화로 좌절된 개혁의 꿈 때문에 귀양 중에 분노와 원통함으로 ‘화전별곡’을 지었던 자암 김구 선생의 처연한 삶이 아로새겨져 있다.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년) 11월 15일 밤 2고(20~22시)에 전격적으로 일어났다.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는 중앙 조정에 대거 진출한 젊은 사림들의 세력 확장으로 자신들의 현실적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불안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훈구파는 중종에게 설득과 협박으로 사림의 제거를 요구한다.

신하들의 힘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중종에게 그런 훈구파의 심상치 않은 동향은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끝내 국왕과 주요 대신들은 불안의 원인을 제거해 국정을 안정화시킬 필요를 공감하고 기묘사화를 즉각 실시한다.

그 때 조광조와 함께 제거된 사림중의 한 명이 자암 김구 선생이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한양에서 멀고도 먼 이곳 남해로 유배를 오게 되었을까?

천하해수욕장에서 출발해 독일마을까지 이르는 "화전별곡길"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꾼 한 젊음이의 그 찬란한 숨결을 느끼게 한다. 개혁의 꿈이 좌절한데서 오는 분노와 자신을 버린 임금에 대한 원통함을 표출한 책이 김구선생이 쓴 "화전별곡"이며  바로 그 이름을 딴 길이기 때문이다.

이날 상주중학교 학부모들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하며 화전별곡의 뜻을 다시 한번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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