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성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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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성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 김종수 시민기자
  • 승인 2016.08.30 10:19
  • 호수 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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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 임진성(壬辰城), 통일신라기에 첫 축조

그동안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25)에 군관민(軍官民)의 힘으로 쌓았다고 알려진 남면 상가리의 임진성(壬辰城)이 통일신라시대에 첫 축조된 이후 고려시대에 수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남해군은 (재)동서문물연구원과 함께 지난 2013년 시굴조사와 2014년 일부 정밀발굴조사에 이어 지난 5월부터 나머지 604㎡ 구간에 대해 후속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진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첫 축조된 것으로 거듭 확인됐다. 이번 임진성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의 허가로 남해 임진성 유적보존정비계획에 따라 1억5000만원의 예산으로 실시됐다.

2014년 시굴조사에서는 단각고배편, 개 꼭지편, 주름무늬병 등이 확인돼 임진성의 초축연대가 통일신라시대까지 이를 수 있음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북쪽 체성 내·외벽이 통일신라시대 산성의 축조수법인 수직쌓기로 조성됐고, 외벽 상부는 이후 고려시대의 수축기법인 허튼층쌓기 방식을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또 체성 내부에서는 고래시설이 설치된 통일신라시대 수혈건물지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 등이 확인됐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자문위원을 맡은 부산박물관의 나동욱 팀장과 LH토지주택박물관의 심광주 관장에 따르면 "임진성 초축의 바른층쌓기 수법과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초축은 최소한 통일신라시대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높고 초축의 상부는 조잡한 형태로 축조됐으며, 성 내부에 어골문 기와 등이 확인되므로 이후 고려시대에 수축한 성벽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임진성의 역사가 통일신라시대로부터 출발했다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 속에서 임진성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새로운 의문으로 남는다. 임진성은 어떻게 임진성이 되었을까?

임진성의 전략 수성무기는 돌멩이?

특히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북쪽 성벽을 따라 길이 약 22m, 너비 약 4m 범위 내에서 3000개 이상의 석환(둥근돌)이 확인됐다. 이는 지금까지 성 내에서 석환이 발견된 사례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량으로, 최근 임진성과 비슷한 시기의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에 축성된 남해안의 거제 둔덕기성과 충청북도 단양의 온달산성 발굴조사 등에서도 다량의 석환이 출토된바 있다.

석환은 직경 10~20㎝ 정도의 둥근 몽돌로 인근바닷가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며, 체성내벽의 초축과 관련된 토축부 상부에 놓여있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성벽을 쌓은 후 성을 방어하기 위한 투석무기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군은  임진성에서 발굴된 석환을 향후 다른 성에서 출토된 석환과 비교해 투석용무기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상남도기념물 제20호인 임진성의 전체 규모는 1만6460㎡ 면적에 높이 1~6m, 둘레 286.3m 규모이며, 이 중 지금까지 조사된 면적은 1204㎡로 성 전체면적의 13분의 1에 불과해 전문가들은 더 많은 유물자료들이 미조사지역에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추가적인 조사를 실시해 통일신라시대부터 초축된 임진성의 성격을 명확히 밝히고 유적의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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