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이 없어가 방망이로 빨래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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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없어가 방망이로 빨래하제"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6.11.22 10:38
  • 호수 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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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말걸기 <61> 박말순 (90·창선면 상죽마을)

동네 저수지 위에 있다는 유자밭을 찾아 헤매다 "탁, 탁, 타탁, 탁, 타닥"하는 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랬더니 웬 노모가 방망이질을 하며 빨래를 하고 계셨다. 내 눈앞에 펼쳐진 워낙 생경한 광경에 노모가 계신 곳으로 쓱 들어갔다.

어무니, 손 안 시렵습니꺼? ^ 아, 괘안타. 기운이 없어가 이리 방망이로 빨래하고 있제. 세탁기 돌릴라쿵께 빨래가 적고.

아이코, 그라모 빨래를 쫌 모아갖고 하모 되지예 ^ 혼자 사는데 몇 개나 된다고.

어무니, 올해 연세가 우찌 됩니꺼? 혼잡니꺼? ^ 내? 구십살. 영감은 간 지 40년도 더 됐지. 내 나이 오십도 못됐을 때 아(이)들 일곱 놔두고 그리 가삣제. 그때부터 시오매, 시아배 모시고 아들 일곱 키우며 살아왔제. 

우리 엄마 부자시네예. 그럼 칠남매들은 다 어디 있습니꺼? ^ 아들 넷, 딸 셋인데 다 서울에 살고 둘째 딸은 미국에 살고. 남해에는 내 혼자 살제.
건강 하시고요? ^ 하모. 아픈 덴 없지. 평상 수술해본적도 없고. 병원에도 한번 안 가봤다. 그리 생긴 모양이라. 

어무니, 참 다행입니다 ^  몰라, 복인가 뭔가. 고마 내 마음으로는 자식들에게 피해안주고 내나 살지 뭐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지. 영감 가고 일곱 키우면서 고상(생)은…안 해 본 게 없고. 그 고상을 어따 말 하긋노.

올해 구십의 박말순 어머니는 "외롭지, 외로워도 뭐 우짜노" 하시면서도 자식들이 모시고 살겠다고 해도 본인이 손사래 친다며, "내가 이래 꿋꿋이 잘 살면 저거들도 잘 안 살긋나. 내는 아무 소원도 없어. 나는 뭐 밤에 죽으나 낮에 죽으나 다 똑같다. 욕심도 없고. 사는 대로 살다 가는 게 내 소원이지" 하고 웃으셨다.

유자사진 찍으러 왔다는 내게 "우리도 유자나무가 뒤에 있는데 내가 따도 못하고 그라고 있다"며 "어디 팔 데 있는가?"하고 물어보시던 박말순 어머니는 스물셋에 이곳으로 시집와서 낮으로는 농사짓고 저녁밥 먹고 나면 주무시는, 그런 삶을 말없이 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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