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다찬 광장의 뜨거운 촛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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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다찬 광장의 뜨거운 촛불이여
  • 이현숙
  • 승인 2016.12.27 11:01
  • 호수 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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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숙
본지 칼럼니스트
창선면 독자

헌정 사상 두 번째로 진행된 탄핵 투표에서 여야 국회의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한을 조기 회수하려는 국민적 합의에 따라,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가 민의를 성실하게 대변한 결과물이다.

국정 농단의 구체적 사례에 관해서는 더 이상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통치자 스스로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훼손하고, 권력에 기생한 비선 실세들과 더불어 전횡과 독주를 일삼으며 기상천외의 추문과 의혹을 양산했다. 그들의 일탈은 미용주사제나 향정신성 의약품 등 약물 남용에 머물지 않고 권력 남용의 극대화를 획책했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는 익히 알지만 `공동 대통령제(2인 대통령제)`는 금시초문인 국민들을 한껏 경악케 하고 `집단 울화병`에 빠뜨린 사실 하나만으로도 탄핵감이다.

그간 언론이 공개한 관련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검찰특별수사본부에 의해 이미 혐의가 입증되었다. 이는 항간의 의혹들이 터무니없는 억측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심이었음을 뒷받침한다. 천만다행인 것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피의자들의 손때가 묻은 태블릿 PC, 업무수첩, 휴대전화 녹음파일을 확보하여 진실을 규명하는 단초로 십분 활용하고 있는 점이다. `우주의 기운`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핵심적 증거자료의 입수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피치 못해 과오를 범했거든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아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리라. 그러나 대국민 담화문 그 어디에도 진정성 있는 사과나 반성의 말은 한 마디 없었고, 사실 은폐에만 급급했다. 명백한 범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인지적 한계를 드러내며, 국민의 마지막 온정인 자진 하야마저 거부했다. 또한 변호인을 앞세워,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보호해 달라는 등 여성 프레임까지 끌어대며 국민을 미혹했다.

결국 주권자의 인내심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6월 민주항쟁으로부터 어언 30년, 화염병과 최루가스가 난무하던 민주화의 성지에 사상 초유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국가의 몰락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성난 시민들은 `즉각 퇴진`과 `탄핵`을 한 목소리로 외치며 촛불집회를 전개했다. 뜨겁고 단호하되 절제된 민심의 촛불은 눈비와 바람 앞에서 사그라지기는커녕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지독한 분노와 슬픔을 세상에서 가장 비폭력적이고도 평화적인 시위로 승화시킨 위대한 시민들이 그곳 광장에 있었다.

과거 한때 웬만한 남자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을 일컫는 표현도 원수, 수반, 정상, 통치권자, 임금, 나라님 등 다양하다. 이 단어들은 공통적으로 국제법상의 자격을 갖추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우두머리를 뜻한다. 그런데 이 나라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대통령의 고유 업무나 권한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한민족은 원래 흥도 많고 정도 많은 민족이다. 엔간한 죄나 흠도 그저 덮어 주는 것이 한국인들의 보드라운 성정이다. 그런 선한 국민을 무기력증과 허탈감에 빠뜨렸고 생업과 학업에 지친 시민들을 한겨울 차가운 광장으로 끌어내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고, 어쩌다 나라꼴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사명감과 수사능력으로 모든 걸 말하겠다.`는 호기에 찬 특검팀에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울러 역사에 오점으로 남지 않을 헌법재판소의 공정한 심판을 기대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으며, 현재의 비상시국은 불행한 사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전 세계는 국정 혼란과 공백 등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한국 국민의 저력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광장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국가 시스템을 재확립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화한다면, 우리는 법과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장차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보다 풍요롭고 정의로운 국가를 물려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사명이다. 영국 자유당 의원이자 역사가였던 허버트 피셔는 `정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이라 했다. 이제 우리의 제도권 정치도 환골탈태하여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어둠이 고인 차디찬 광장을 수많은 촛불이 환히 밝히듯, 이제 곧 짙은 어둠을 헤집고 2017년 새 아침이 희붐하게 밝아올 것이다. 희망의 날개를 고이 달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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