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욕심 많았던 비란 소녀, 시금치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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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욕심 많았던 비란 소녀, 시금치 캐다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7.02.28 11:16
  • 호수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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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말걸기
<62> 박순옥 (82·이동면 광두마을)

햇살은 봄이나, 바람은 아직 겨울인 요즘,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광두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엔 시금치와 씨름하는 나이든 소녀 하나가 있었다.

"시금치 캐시는거에요?"= 하.
"전부 어무이 밭입니꺼?"=암, 요거이 한 200평 되는데 우리 땅이제.
"어무이 성함이 우찌 되시는데예?" ^ 초면에 뭘 그리 알라 샀는가(웃음). 내 이름은 박순옥이네.

남해시대 강영자 기자라고 소개했더니 박순옥 어머니는 "남해시대 많이 봤제. 내도 신문을 보던 사람이거든. 근데 요새는 눈도 어둡고 나이가 많아 글이 안보여" 라고 답하시면서도 여든 둘이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손놀림으로 시금치를 캤다. 박순옥 어머니는 작년 이맘때 남편을 먼저 떠나 보냈다고 한다. 아들 셋에 딸 하나로 총 4남매를 뒀다는 어머니는 `설천면 비란`에서 열아홉의 나이로 이곳 광두마을로 시집왔다고 한다.

"4남매는 어디 사나요?"=다들 서울서 사네. 특히 막내인 딸이 머리가 참 좋았네. 이동의 중학교에 나와갖고 그 째깐한기…내 닮아 딸도 째깐했거든. 그 째깐한 걸 진주여고에 입학시킬 땐 `니가 누구를 믿고 학교 3년을 댕길끼고` 싶어 눈물이 났는데 까딱도 없이 잘 졸업해 연세대 갔지, 하고 흐뭇한 듯 말씀하셨다. 

4남매가 다들 먼 서울에 있으니 명절에도 서울로 올라가신다는 박순옥 어머니는 본인 어렸을때 그리 가난하지도 않았는데 초등학교2학년 올라갈 무렵에 부모가 퇴학을 시켜 그길로 농사만 지은 게 한이 돼 독학으로 `한글첫걸음`을 뗄 만큼 공부욕심이 많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본인은 자식 넷을 대학공부까지 전부 다 시켜냈다고 하니 그 희생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애들한테 공부하다 잠 오거들랑 라면 삶아먹고 깨라꼬 `곤로`를 공부방 앞에 뒀다"시던 박순옥 어머니. 그래서였을까? 어머니의 작은 손끝에서 지금도 공부하는 소녀가 보였다.
강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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