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사람이 희망이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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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사람이 희망이었어라"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7.05.23 10:19
  • 호수 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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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양레미콘 류세봉 씨, 1985년 남해성당에서 시작된 인연…

배기현 천주교 마산교구장의 후원으로 해시계 제작 물꼬

 사람의 준 말이 `삶`이라는 해석이 있듯이 우리 삶의 대부분은 사람으로 인해 사라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화려한 부귀영화도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지듯 삶에는 어김없이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인 1985년, 남해성당에 제12대 신부로 부임해온 배기현 신부, 새성전 건립에 여념이 없을 당시 풍족했던 전 남양레미콘 류세봉 씨는 시멘트와 모래를 남해성당 건립에 기증했다. 딱히 종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뜻을 두고 행한 일도 아니었고 그저 좋은 일에 쓰이는 거라 그렇게 준 뒤에는 잊었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 속에 사라진 듯 했다.

 그러나 이후 인생은 얄궂게도 남해 최고의 재벌로 불리던 류세봉 씨의 대부분을 앗아갔다. 1998년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거릴 당시, 너나없이 근로인원감축을 감행하던 당시에 류세봉 씨는 오히려 직원 200명을 그대로 두고 70여명을 더 고용해 아리랑마을을 만들어 2년간 해시계 제작에 몰두했다. 좋은 취지였으나 시대가 좋지 않았다. 연이은 부도와 사기를 막아내지 못하고 `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과학정신과 인류의 편익에 도움이 되고자 한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보급하고자` 만든 해시계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중단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배기현 신부가 천주교 마산교구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류세봉 씨는 배기현 신부에게 축하인사를 전했고, 그것이 계기가 돼 얼마 전 두 사람은 옛일을 추억삼아 만나게 되었다고. 사람의 마음씨앗에 어느 찰나에 새싹이 자라났던 것일까.

 딱한 사연을 알게 된 배기현 신부는 선뜻 500만원이라는 큰돈을 못다 이룬 해시계 제작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전한 것이다. 신용불량자에다 악화된 건강으로 삶의 의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류세봉 씨는 너무나 큰 고마움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때부터 몸체만 남은 해시계에 나침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의`와 시간을 올바르게 측정할 수 있는 태양의 그림자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영침`을 구해 부착해 완제품을 만든 것이다.

 류세봉 씨는 "죽기 일보 직전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힘을 줘서 너무나 고맙고 다시 용기 내어 살아보라는 뜻을 느꼈다. 배 신부님께 완성된 해시계를 드리면서 다시 삶이 시작됨을 느꼈다"며 "이 소식을 접한 제 딸도 땅속에 묻힌 해시계가 신부님의 사랑으로 다시 빛을 보게 돼 너무 기쁘다며 교리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류세봉 씨는 "공예를 전공한 딸이 예전부터 유리골동품, 공예품을 모은 것만 300여점이 넘는다. 혼자 유리공예품을 만드는 것도 잘하는 딸을 위해 재기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죽기 전에 작은 유리박물관을 만들어 주고픈 게 아비의 꿈"이라고 말했다.

 한때는 전 세계 선박업자들에게 귀한 선물로 전해지기도했던 해시계, 이러한 류세봉 씨의 해시계에 애정과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직접 연락해(※해시계 주문 및 제작 m.010-6600-2268)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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