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꿈꾸던 젊은이, 남해와서 포근한 둥지 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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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꿈꾸던 젊은이, 남해와서 포근한 둥지 틀다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7.06.27 11:02
  • 호수 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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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 촌 |

남해에서 만난 수학의 매력으로 제2의 삶 찾은 `수학의 숲` 전영현 원장

 남해에 젊은이가 없다. 이러다 노인의 섬이 되는 건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들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해엔 젊은이가 산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누구네 집 아들·딸이 아니라 남해가 좋아서 남해에 살고 있는 젊은이가 존재한다. 뜨거웠던 촛불시국, 읍사무소 앞에서 열렸던 `세월호 집회`에서 보았던 한 젊은이. 야구모자를 쓰고 함께 기억하자고 외치던 그 젊은이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귀촌 7년차 청년이었다.
 
꽤 젊어 보인다 = 81년생으로 서른 일곱이다. 서울 토박이다. 서울엔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최근 병으로 돌아가셨다. 2011년 민족대명절인 설날 차례를 지내놓고 설날 다음 날 캐리어 하나 싸서 곧장 남해로 내려왔다.
 
무슨 연고가 있었나? 남해엔 어떻게 내려오게 됐나 = 고등학교 친구가 여기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수학강사를 맡아달라고 해서 오게 됐다. 고교시절 이과생이었기에 수학, 과학은 특히 좋아했었다. 대학 졸업하고 남해 오기 전까지는 영화감독을 꿈꿨다.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 후 내내 영화판에 있었다.
 
귀촌하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은 = 집안에 장손이다 보니 본가하고 멀어지는 것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이 컸다. 그래서 연휴가 생기면 홀어머니를 뵈러 서울로 갔었다. 처음엔 일마치고 혼술할 곳도 없고, 영화 보러 진주까지 가야한다던가, 이야기 나눌 커뮤니티 등이 없어 외로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지나니 남해만의 삶이 더 좋았다. 서울에서는 늘 바쁘고 쫓기는 느낌이었다면 여기선 `안 바빠도 되지 않나?`라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좋다.

영화에 빠져 살던 사람이 지금은 수학의 숲에 빠져 산다, 가능한 일인가 = 본래 수학을 좋아했었다. 그러다 여기서 5년간 학원수업을 하면서 수학의 매력에 완전 빠져들었다. 사실 영화 일 10년 하니 영화제작스킬이 느는 게 아니라 사람 보는 눈이 늘더라. 수학강사를 하면서도 내가 수학을 잘하느냐보단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면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해시키는 일이 더 귀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영화든 수학이든 다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 즉 내가 아는 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학생들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울 수 있도록 유튜브에 `룗전영현룘 수학의 숲`이란 이름으로 동영상 강의도 자체 제작해서 올려뒀다.
 
수학의 숲이라 명명한 이유가 있는지, 어떤 교육 공간을 꿈꾸는지 = 평생을 두고 남해에서 공부한 시간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가장 수학에 젖어 살았다. 본래 꽃과 나무 등 키우는 걸 좋아한다. 흔히들 그러지들 않나,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수학은 숲과 가장 닮아있는 학문 같다. 원리부터 차근차근히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때 아름다운 숲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같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관심이 많다. 주입식교육처럼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교육 방식보다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하면서 `왜 몰라? 왜 안 해?` 다그치는 교육이 아니라 재미를 찾아가는 교육을 추구한다.

직업 특성상 오전엔 쉬고 오후부터 일할 텐데, 남해 어르신들께 오해 사는 일도 있지 않나 = 그렇다. `젊은 사람이 왜 시골에 처박혀 살아?`하는 시선이 많다. 또 늦은 밤, 마치다보니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거나 교류 혹은 관계 맺을 시간이 부족해 한동안은 참 많이 외롭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성격을 더 바꿔서 주거지 동 대표도 자진해서 맡고, 독서모임, 둥지싸롱 내 영화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끝으로 본인에게 남해란 = 둥지같다. 포근한 곳이자 존재 자체다. 낯섦이 점차 익숙함으로 바뀌면서 이젠 내게 진짜 집이 돼 버린 것 같다. 남해오기 직전 무작정 인도·네팔 여행을 했었는데 그 당시 네팔의 포카라 지역이 너무나 편안해 보름정도 머물렀었는데 내겐 남해가 그런 곳이다. 평화로운 이 느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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