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뜨개로 몰입의 즐거움 속에 사는 여인, 한막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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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뜨개로 몰입의 즐거움 속에 사는 여인, 한막달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7.07.04 13:53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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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생, 아흔 다섯의 숫자가 무색한 그녀는 끊임없이 실을 엮어 이웃과 나눠
한막달 어머니는 본인이 직접 만든 덧버선을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노인복지관 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물 받은 덧버선을 신고 있다.
코바늘 손뜨개를 사랑하는 95세의 한막달 씨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서 가장 아프게 읽은 대사다.

 우리의 현실은 소설보다 더 가혹하게 남녀노소, 세대를 초월해 `물리적 숫자`로 삶을 저울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한 여인, 한막달 씨는 우리 안에 뿌리박혀 있는 이미지 혹은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한 분이셨다.

 총 28명의 어르신들이 한 공간에서 휴식을 보내는 그곳의 한 모퉁이에 가만히 앉아 말없이 그저 코바늘 손뜨개에 몰입하고 있는 한막달 씨.

 그녀는 1923년생, 올해 아흔 다섯의 손뜨개 전문가다. 읍 북변동 경찰서 근처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그 동네 일대를 떠난 적이 없다는 한막달 씨는 젊은 시절 배웠던 코바늘 뜨개질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전 10시 20분쯤이면 노인복지관에 도착해 오후 3~4시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별 다른 말없이 뜨개질만 하는 그녀. 곁에서 아무리 10원 짜리 재미 화투를 치건 관심 밖이다. 그저 묵묵할 뿐이다.
 
"5월 단오면 봉선화 꽃물 들여 주던 다정하던 신랑"

 그녀가 뜨개질에 빠져든 건 교통사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22살에 결혼해 23살에 첫 딸을 낳았던 그녀는 유독 운동을 좋아했었다고. 7남매를 낳아 기르고 다 키우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에 빠져 살았었단다. 50대는 배구, 60대는 배드민턴, 70대는 게이트볼 치는 재미에 푹 젖어 살다가 그녀 나이 89세에 겪은 교통사고. 그 바람에 다리 수술을 하고 자그마치 9개월 동안을 병원에 묶여 있었던 것.

그때 다시 그녀를 몰입하게 해 준 것이 젊은 시절 배워뒀던 `손뜨개`였다고. 그때부터 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다 뜨기 시작했다. 발에 신는 덧버선부터 핸드폰 커버, 차량용 핸들 커버와 방석, 손주들 조끼와 옷까지 도안 하나 없이 척척 짜대기 시작한 것이다. "찬물 한 잔 이라도 나눠주는 걸 좋아해"하고 웃으시는 한막달 어머니.

 그래서일까? 손뜨개 해서 가장 좋은 건 자신이 만든 걸 주변에 선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신다. 노인복지관 내에서도 덧버선 선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녀의 나눔은 이어졌다. 아흔 다섯의 나이, 아들 셋이 같은 남해에 살고 있지만 그녀는 혼자 지내는 게 더 편하다고 한다. "내가 이 나이지만 내 생활은 전부 다 해. 자식들이 남해에 살면서 워낙 잘 챙겨주니 혼자 살아도 전혀 불편함도 없어, 난 복 받은 사람이야"하신다.

 그녀 나이 여든넷에 여든 여섯의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짓궂은 물음에 "보고 싶음 꺼내서 보면 되지" 하시더니 뜨개질로 만든 가방에서 남편사진을 꺼내 보여주더니 "우리 영감 이삐제(예쁘지)?"하고선 본인의 봉선화 꽃물 들인 손가락을 뻗어 보인다. "해마다 5월 단오 무렵이면 신랑이 봉선화 꽃물을 들여 줬었지. 지금은 내가 하는데 볼 때마다 생각이 많이 나.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남편이 다정해서인지 자식들도 하나같이 다정해"하면서 웃으신다.

 젊을 때부터 육식은 잘 않고 김치와 된장, 채소를 주로 즐겨 드셨다는 한막달 씨는 읍 시장내  뜨개질 가게 `솜씨방`의 가장 나이 많은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지금도 색색들이 실을 볼 때면 `만들고 싶은 것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한다. 환한 미소로 한시도 손을 놓지 않는 그녀의 소원은 단 하나, 오색실처럼 자식들 두루두루 건강하고 잘 되기만을 바라는 것. 오늘도 그녀는 추억과 소망 사이를 오가며 코바늘을 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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