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생명줄과 하얀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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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생명줄과 하얀 국화
  • 남해타임즈
  • 승인 2017.07.04 14:06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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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화
본지 칼럼니스트
미송새마을금고 감사

나랑 언니가 아빠 역할 도맡고 엄마도 우리가 잘 책임질게. 너무 고생하면서 살았으니까 올라가서는 편하게 있어. 아파트 외벽 작업을 하다 인사도 없이 하늘나라로 간 아빠에게 쓴 딸의 편지 일부분이다. 사람의 생명줄을 끊는 것 보다 낮잠 시간을 소중한 가치로 믿었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증세의 시발은 어디인가. 성숙은 외적인 발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감정의 고조와 이완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회에는 사람 사는 풍경이 없다. 풍요롭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정신 작용이 기본만 되어도 사람 사는 풍경이 된다.

나랑 언니가 아빠 역할 도맡아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만큼은 못하겠지만 엄마도 우리가 잘 책임질게. 너무 고생하면서 살았으니까 올라가서는 편하게 아프지 말고 있어.

몇 번을 읽어도 저민 마음에 가슴이 답답하다. 15층 아파트 외벽 작업자가 공포감을 이겨내기 위해 켜둔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고 주민이 원성을 지른다. 이어지는 음악소리에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옥상으로 올라가 밧줄을 자른다. 어찌 할 방책 없어 바닥으로 떨어져 세상을 떠난 한 가장의 둘째 딸이 인사도 없이 하늘나라로 간 아빠에게 쓴 편지 일부분이다.

아파트 외벽에서 온 몸을 지탱하며 매달려 있던 아빠가 의지할 곳이라곤 유일한 밧줄 하나. 외동딸로 자란 부인의 외로움을 채워주고 자식들에게도 형제애를 만들어 주기 위해 5남매를 낳았단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식구들의 행복은 집안에 겹겹이 머물렀다. 남편은 그리고 아빠는 식구들에게 생물의 발육과도 같은 삶의 양식이자 충만한 선물이었다.

세 살배기 아이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5남매에게 앗아간 행복은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당신을 보내는 아내의 눈물을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할까.

숨진 가장을 포함해 일곱 식구의 생명줄이 잘라진 돌발적인 사변을 생각하자니 먹먹한 마음뿐이다. 잠시 상념에 잠긴다. 만약 내가 없는 세상에 우리 가족은 어떨까. 가족 없는 세상에서 나는 어찌 버틸까. 생각만 해도 불안하고 참혹한 심정이다.

타인의 생명줄이 끊어지는 것 보다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을 더 소중한 가치라고 믿었던 것인가. 사소한 내 것은 소중하고 귀하디귀한 남의 것은 하찮게 여기는 증세의 시발은 어디인가.

같은 나라에 살면서 서로가 느끼는 가치관의 대립(혼란)이 이리도 컸다는 말인가.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덜 중하거나 사소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람들과 사회가 구성져 있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인간의 가치관 문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가치관의 혼란은 여러 가치 중에서 하나를 정하지 못했거나 반드시 가져야 할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지 못한 경우에 발생한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규범이 없는 무규범의 가치관 혼란이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이런 혼란은 주로 사회가 강조하는 중요한 가치를 상실한 경우에 나타난다. 무규범의 상태에서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고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만 추구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한다. 성숙해 지는 것이다. 성숙은 외적인 부분의 발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면의 성숙이 진정한 성장이다. 내면의 결핍이 무엇인지 찾아 존귀한 것으로 메꿔야 한다. 그래야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된다. 헤매거나 흔들리지 않는 자기중심이 생겨 감정은 절로 다스려진다. 이 중요한 작업을 스스로 해야 한다.

어이없고 허무하게도 그를 지탱했던 밧줄이 절망으로 내려 않았지만 여섯 식구들의 희망의 끈은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작위적인 살인에 분노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엄마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 남았다. 우리 사회가 내미는 손이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어 극복할 만한 정도의 장벽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감정의 고조와 이완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회에는 사람 사는 풍경이 없다. 풍요롭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우리의 정신 작용이 기본만 되어도 사람 사는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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