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활)을 배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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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활)을 배우는 시간
  • 남해타임즈
  • 승인 2017.07.18 11:50
  • 호수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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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민 현
남해제일고 교사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 향수-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국궁이다. 지금 봉강산에 있는 남해 활터 금해정이 그 무렵에는 남산에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이 남산 너머 사부랑 신촌 마을이라서 해양초등학교에 다녔던 등하굣길에 금해정을 거쳐서 지나다닐 때가 많았다. 그때 활을 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파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화살을 넋을 놓고 보곤 하였다. 궁사들이 줄지어 서서 과녁을 향해 활을 내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대나무로 활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뒷산을 쏘다니면서 활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 때 나도 어른이 되어 언젠가는 활을 배워야지 하는 꿈을 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활을 배우고자 하는 꿈을 품은 지 40년, 비로소 올해 그 꿈이 이루어졌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아름다운 말이 나에게 진실이 된 것이다. 오십 줄을 넘어 서고 육십 줄을 눈앞에 둔, 어쩌면 쉼 없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저 만치 가을 산의 산유화처럼 서 있고 싶은 때에, 아는 선배님이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와 "자네 활 배우러 오게"하는 한 마디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금해정으로 달려갔다. 오랜 꿈이 이루어 진 순간이었다.

금해정은 마치 오랫동안 떠나있던 고향집을 찾아온 것처럼 낯설지 않고 마음이 편안했다. 박해동 명궁 사두님을 비롯하여 여러 명궁님들과 선배 사우님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박해동 명궁님과 박윤선 사범님이 정성을 다해 국궁의 정신과 예와 사법(射法)을 섬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초보 신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 우리의 정신이고 우리 활의 기풍이며 금해정의 품격임이 느껴졌다. 활을 배운지 한 달 만인 2017년 6월 4일에 집궁식을 가졌고 정식으로 사대에 섰다. 그날 1중을 하였다. 그리고 6월 25일 새벽 6시 25분에 삼중을 하였다. 지금은 5중 몰기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활을 배우면서 나에게 작지만 뜻있는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많이 지쳐있었는데, 활을 즐겁게 배우다 보니 마음과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활력이 생긴 것이다. 궁력도 늘고 궁체도 좋아졌다는 사우님들의 격려도 많은 힘이 되었고 성취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활을 쏠 때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몰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몰입이 나를 여유 있게 했다. 이 몰입이 일상의 온갖 잡념으로부터 마음을 분리시켜 해방시켜 준 것이다. 몰입을 통하여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서 삶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자 마음에 저절로 즐거움이 찾아 왔다.  

이게 다가 아니다. 국궁은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자기 수련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할 수 있었다. 들숨 날숨 깊은 숨쉬기도 즐거웠다. 또한 일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의 맛이 나를 더욱 즐겁게 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기본이 바로 서야 나아갈 힘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 말씀의 이치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음을 활을 배우면서 다시 느꼈다. 노자의 말씀도 생각났다. `약지강골(弱志强骨)`이라, `뜻을 약하게 하고 뼈대를 강하게 하라.` `곧 마음을 비우고 기본을 튼튼히 하라`는 뜻이다. 조급한 마음과 얄팍한 계산으로 기본을 무시하고 나아가는 일은 국궁에서는 통할 일이 없다. 세상만사 어느 일치고 기본을 바로 세우지 않고 제대로 굴러가며 오래가는 일이 있겠는가.

활을 배우면서 또 다른 꿈이 생겼다. 학생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인 국궁을 가르치는 것이다. 국궁에는 수 천 년 동안 내려온 우리 동이족(東夷族) 고유한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 정신은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다. 40여 년 전의 활을 내고자 하는 순박한 꿈이 오늘에 이루어졌으니 이 또한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대도 활을 배우고 싶은가? 봉강산(鳳岡山) 산마루에 푸른 송죽(松竹)으로 둘러싸인 봉황의 둥지 금해정으로 오시어라. 화랑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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