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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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 이충열
  • 승인 2017.08.24 14:01
  • 호수 5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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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장항마을 박재식 씨, 아버지 박성언 씨의 피폭자 삶 증언 원폭피해자와 자녀에 대해 국가적 차원 조사·제도적 관심 호소
서면 장항마을 박재식 씨가,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 피폭을 받고 한국으로 건너와 온갖 병고에 시달리며 어렵게 생활하다 51세를 끝으로 별세한 아버지 박성언 씨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아버지는 히로시마에서 입은 원폭 피해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반점과 고름이 온몸에 번지는 등 15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서면 장항마을에서 고기잡이로 평생을 살아온 박재식(65세) 씨의 아버지 박성언 씨는 1943년 일본 오사카에 강제로 끌려간 강제징용 노무자였다. 이듬해 1944년 히로시마로 옮겨왔던 박성언 씨는 1945년 8월까지 노역장에서 일하다가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의 간접 피해를 입었다.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해방과 함께 고향 남해로 돌아와 생활했지만 피폭 3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박성언 씨의 병세가 나타나고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농사지을 땅과 변변한 집도 없었던 박성언 씨는 가족을 이끌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는 처지였는데 원폭으로 인한 병까지 겹쳐 가족들의 생활은 힘들고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이 때의 상황에 대해 박재식 씨는 "우리 아버지는 원폭 피해자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고 피부에 검은 반점과 고름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더니 온 몸으로 번졌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 박성언 씨는 피폭으로 피부색이 더욱 검게 변했고 급격하게 살이 빠지기 시작해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고 박재식 씨는 회상했다. 그렇게 병고와 생활고를 함께 겪다가 아버지 박성언 씨는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박재식 씨는 형제자매도 없이 홀어머니와 단 둘만이 세상에 남겨져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왔다.
 
그후 박재식 씨는 2013년 정부가 일제강제노무자 조사를 실시하기 전까지는 세상 누구에게도 자기의 아버지가 원폭 피해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더욱 기가 찬 일은 2013년에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지원위원회)에서도 아버지의 원폭피해 사실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었다.
 
2013년 10월 4일 지원위원회가 작성한 `위로금 등 지급결정서`에는 아버지 박성언 씨가 1943년~1945년 8월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불상 제조작업장으로 강제동원돼 작업 중 다리부상을 입었다는 점만 인정하고 있다.

"원폭으로
  병 앓는데
  증명서 류
  없다고
  정부는 소극적"


지원위원회는 원폭 피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일본 거주지 주소나 병 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원의 진료기록 등을 요구했지만 거주지 주소를 보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병원에 제대로 가 치료를 받을 사람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당시 아버지의 병증을 찍어둔 사진이라도 있었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에 사진찍을 엄두나 냈겠는가?
 
박재식 씨는 "피폭으로 고름이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병은 앓고 있는데도 증명 문서가 없어 외면당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이다. 원폭피해는 직접 피해 외에도 간접 피해로 인해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2세에게 유전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원폭 피해는 우리 민족이 타국 일본의 지배 하에 있던 시기에 발생한 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원폭피해자 조사와 유전성 정도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군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원폭 피해 1세대 생존자 중 전국적으로 약 2000여명만 원폭피해자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을 위한 요양시설은 한국적십자에서 소규모로 지원하는 곳 뿐이다. 정부는 원폭 피해자 문제에서 무책임으로 일관해 오다가 지난해 5월 19일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원폭피해자법)이 뒤늦게 제정됐지만 실질적인 진행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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