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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류신사와 오타츠관음규슈문화유산답사기 6
남해타임즈 | 승인2017.11.09 11:11|(572호)
긴류신사
김성철
남해서복회 사무국장

모로토미로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긴류신사와 오다츠관음을 통해 씻었다. 사가서복회장과 서복장수관장은 굽이굽이 긴류잔산(金立山, 해발 502m)의 허리를 돌아 산중턱 주차장에 우리 일행을 내려 주었다. 좁은 내리막길을 따라 10분 쯤 내려가니 긴류신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서복장수관에서 산행을 하면 1시간 정도 걸리는 길을 승용차로 올라왔으니 미안함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답사여행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금립신사는 다른 여느 신사와 별다른 것이 없었지만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에 도착해 첫 번째로 영약을 찾은 산이라 그런지 마음만은 분명 달랐다. 

서복은 긴류잔산 속에서 신선의 도움을 받아 `후로후키`라는 영약을 얻었다. 후로후키는 한약으로 사용되는 간아오이라는 식물의 방언으로 달여 먹으면 두통과 복통에 효과가 있는 식물이다. 

긴류신사를 탐방한 우리 일행에게 서복장수관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제안했다. 입장료도 무료로 해주었기에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곳에 식당은 없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우리에게 무조건 따라오라고 했다.

오타츠관음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서복과 사랑했던 운명의 여인을 모신 신사였다. 한 칸짜리 작은 사당 안에는 관세음보살 형상을 한 청동불상이 있었다. 긴류 겐조의 딸 오타츠는 서복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5년 후에 돌아오겠으니 반드시 기다려 달라"고 한 말을 50년 후로 잘 못 전해 듣고 슬픔에 빠졌다. 오타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슬픈 사랑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이를 가엾이 여겨 관음상을 만들어 장사를 지내 주었다. 오타츠관음은 연분을 맺어주는 신으로 추앙되어 지금도 많은 연인들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언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비롯된 사랑이야기에 우리 일행은 숙연해졌다.

오타츠관음을 뒤로 하고 점심식사를 한 후 3일째 마지막 답사지인 아리타에 있는 조선시대 도공 이삼평(李參平) 유적지로 향했다. 먼저 규슈도자문화관을 방문했다. 일본 도자기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지만 큰 감흥을 받지 못한 나는 서둘러 도산사(陶山祠)로 향했다. 대규모 신사는 온통 도자기 세상이었다. 

이삼평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온 대표적인 도공으로 `가나가에 산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양질의 백토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아리타에서 최상급 백토광을 발견하여 일족을 이끌고 정착하여 백자를 만들었다. 1650년 아리타 도자기는 나가사키항을 통해 수출되면서 신화가 시작되었고, 이삼평은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되었다.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서복을 중심으로 하는 규슈의 역사 문화답사도 끝나가고 있었다. 이튿날 우리 일행은 후쿠오카의 하카타타워와 모모치해변에서 수월한 시간을 보내고 쇼핑을 마친 후 김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끝>

※ 김성철 남해서복회 사무국장의 `규슈문화유산답사기` 연재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원고를 보내주신 김성철 국장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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