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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김치의 단상
남해타임즈 | 승인2017.11.30 13:22|(575호)
송홍주
남해신협 이사장

40여 년 전, 어릴 적 기억에 입동(立冬)을 보내고 소설(小雪)을 지나면서 가을걷이가 끝난다. 이른 아침으로 들판에 하얀 서리가 앉고 찬바람이 스쳐갈 때면 겨우내 먹을 김장김치를 담그는 일로 분주했다. 김치를 담근 뒤 땅속에 묻는 김장하는 날은 가을철 풍습 가운데 매우 정겨운 일상이었다. 김장김치는 겨울철부터 춘궁기를 지나 초여름에 이르는 동안 기본 반찬으로 매우 중요했다. 별다른 반찬이 없고 신선한 채소 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에 김장하는 일은 겨울나기를 위한 집안의 대소사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밤새 다듬어 준비한 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를 다지고 감칠 맛 나는 젓갈을 넣어 양념을 버무린다. 소금에 절인 속이 꽉 찬 배추 잎 사이사이에 버무린 양념을 골고루 넣어 담근 김장김치는 항아리에 넣어 땅속에 파묻어 저장했다. 항아리 속의 김치는 겨울 한철은 물론 1년 내내 먹을 소중한 양식이었다. 김장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웃집이나 친척들이 함께 모여 품앗이로 김치를 담갔으며, 잔칫집 분위기였다. 군불 땐 가마솥에서 삶은 고구마 위에 붉은 양념을 한 배추김치 한 가닥을 얹어 먹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다.

우리나라에서 김치는 삼국시대에 처음 나타난다. 마늘·생강·파·고추 등을 버물어 양념으로 넣는 지금의 김치는 배추가 개량 재배된 근대에 와서 생겼다고 한다. 김치는 계절과 지방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겨울 김장철에는 일반적으로 통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파김치, 갓김치, 깍두기김치 등을 주로 담그며, 간장에 넣어서 담그는 장짠지, 전복에 유자나 배를 곁들인 전복김치, 생선과 육류로 맛과 영양가를 높인 어육김치도 있다. 

김치와 비슷한 음식은 다른 문화권에도 많지만, 겨울이 다가오면 김치를 만들어 저장해서 먹는 풍속으로 자리 잡은 김장은 단순히 음식을 장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웃끼리 품앗이를 하며 김치를 담가온 공동체의 나눔이라는 상징적 정서가 숨어 있다.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김장문화`가 201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한나라의 대표적인 음식문화가 세계인이 보호하고 전승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문 일이라고 한다. 김장문화는 우리 조상들이 유구한 세월동안 이웃과 더불어 품앗이를 하며 담근 김치를 나눠먹는 공동체 정신을 슬기롭게 대물림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고 본다. 

김장은 문화적인 의미도 깊지만 김치가 실제로 몸에도 좋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몇 년 전에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을 때 유독 한국에서만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은 걸 두고 외국 언론에서는 한국인들이 김치를 먹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로 김치가 조류독감과 사스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집안의 연례행사로 여겨지던 김장풍경이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회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식구수가 줄어들었고 김치를 먹는 양도 적어졌고, 김장을 하지 않고 김치를 사다가 먹는 경우가 많다. 김치를 판매하는 식품회사가 주부들의 김장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0%만이 김장 계획이 있다고 했고, 70%정도는 김장을 하지 않고 김치를 얻거나 사 먹겠다고 한다. 김장을 직접 하는 경우에도 절임배추를 이용하여 간편하게 김치를 담그는 가정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가족 사회의 붕괴와 간편함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변화로 우리민족의 소중한 전통으로 계승해야할 김장문화는 점점 쇠퇴되고, 결국 김장의 풍습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어 아쉽다. 다행스러운 것은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농산물 시장에는 김장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여러 봉사단체에서도 복지시설이나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상징으로 진행하는 김장 나눔 행사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올겨울도 따뜻하게 날 수 있음을 예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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